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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에스뗼리 24~27일 차

by 테오∞ 2017. 11. 6.

3~6.11.2017


  전기장판 위에서 호떡 반죽이 숙성되고 있는 중이다. 일교차가 심한 동네라 지금 같은 저녁에는 상온에 두기 뭐해서 장판을 켰다. 이스트의 시큼한 냄새가 난다. 토요일에 건진 두꺼운 후드집업을 걸치고 타자를 친다. 오늘(6일 월요일)은 재택근무를 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다. 어제가 지방선거날이었는데, 학교 교직원들 대부분(국립대라 그런가)이 선거관리요원? 위원으로 하루 종일 봉사하다보니 선거 다음 날은 보통 휴무라고 한다. 덩달아 나도 아침 늦게 일어나는 호사를 누렸다. J아줌마는 내가 하도 안 일어나서 아픈 줄 알았단다. K가 오트밀(아베나?)죽을 가져다 주어서 먹었다. 저녁이 되어 층메인 Y가 녹초가 되어서 돌아오는 걸 보니 괜스레 좀 미안했다.

  여튼 나도 집에서 계속 탱자탱자한 건 아니고 나름대로 일을 했다. 호떡 만들기도(시도하다, probar) 일의 연장선이다. 하여간 의자에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다. 아니, 사실 허리는 그라나다에서부터 쭉 아팠다. 침대 매트리스 때문인지 자전거 안장이 너무 낮아서인지 내 자세가 좋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모두 다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만. 하여간 어제는 바닥에서 잤다. 타일 바닥이지만 요가매트와 두꺼운 이불이 찬기를 막아 주어 춥지는 않았다. 후드 덕이기도 하고.

  안 그래도 옷을 사려고 벼르고 있었다. 여기서 옷을 산다 함은 대개 중고 의류(ropa usada)를 산다는 말이다. 니카라과 사람들은 남들이 사용하던 물건을 거리낌 없이 사고 판다. 심지어 속옷까지. 아직 그 정도의 경지는 아니지만, 원래 구제품을 사는 것도 입는 것도 좋아하던 나 (보물찾기하는 느낌이 좋음. 한 번 맛들이면 새 옷 사는 게 무지하게 돈 아까워짐)인지라 니카라과는 내게는 나름 쇼핑 명소인 셈이다. 중고 옷이지라지만 나름 종류별로 옷을 나눠놓은 번듯한 매장에서는 한 벌에 4, 5달러는 주어야하니 평균 월급이 200달러쯤 된다는 현지 물가로 보면 마냥 싼 것만은 아니다. 그나마 에스뗄리 같은 경우는 미국을 잇는 판 아메리카나 하이웨이가 도시를 지나고 있어서인지 그라나다에서 봤던 옷들보다 비슷한 상태의 옷들을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출근할 때는 매일 코이카 지급 의류만 입고 있고 (수업용으로 블라우스를 입을 때는+코이카 바막), 한국에서 가져와서 채 개시 안 한 옷들도 있으면서 뭔 또 옷이냐 하겠지만, 나름 옷이 필요한 이유가 있었다. 요 며칠새 부쩍 추웠기 때문이다. 밤과 새벽 한정이지만 뭐. 하여간 저녁 외출 할 때 가볍게 걸칠 바막, 여기 코이카 있다!!라고 선전하지 않을 수 있는 단순한 겉옷과 춥지만 장판을 켜기에는 애매한 밤에 입을 두툼한 후드가 있었으면 했다. 토요일 오전에 대청소를 한번 싹 하고, 지급품 상자로 신발장(zapatero!)도 만들고 분주하게 지내다가 슬렁슬렁 나갔다. 까사 데 꿀뚜라 옆에 있는 메가보띠께라는 중고의류매장에 갔다.그라나다에도 있는 곳이다. 하여간 거의 한 시간 넘게 샅샅이 뒤지고 뒤져서 딱 필요하던 바막과 후드를 찾아냈다. 다른 옷들이 눈에 밟혔지만 꼭 필요한가? 대체할 수 있는 옷은 없는가? 걸칠 수 있는 몸은 하나다 나야 등등을 자문자답하며 유혹을 이겨냈다. 대신 12월 17일이 생일이라는 층메 Y를 위해 미리 블라우스를 샀다.

  아, 오늘 아줌마가 치과 다녀오는 길에 샀다며 블라우스 하나를 건네주었다. 어두운 페이즐리 무늬에 부드러운 감이 딱 내가 좋아할 만한 옷이다. 옷을 선물 받은 건 지난 번 처음 교회 가던 날 받았던 검은 블라우스에 이어서 벌써 두 번째다.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감사했다. 이번 금요일 영화의 날에 입고 갈 생각이다.   


- 4살 된 D는 어제 벨루사(세 마리의 개들 중 하나. 제일 큼)에게 손가락 욕을 했다가 그라운딩을 당해 교회에 못 갔다. 근데 아직 혼나는 게 뭔지 잘 모르는 듯. 너무나 태연하게 내 방에 올라와서 막 말을 걸었다.

- 가족 구성원을 드디어 정확하게 알았음. 친자식은 넷, 미국 가 있는 첫째 딸, 둘째 딸이자 내 층메인 Y, 스페인에 있는 셋째 아들, 막내 에밀리. K와 주말이면 가족들과 방문하는 J는 몇 년 동안 같이 살았던 친척들. 근데 다 마마, 파파, 이하, 이호라고 하니 뭐 친자식이고 자시고 나누기도 뭐하다. 

- 내일부터 저녁을 조금 먹을 예정(층메 Y는 어지간하면 아예 안 먹는다고). 대신 아침과 점심을 많이 먹으려 함

- 호떡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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