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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에스뗄리 28~33일 차

by 테오∞ 2017. 11. 13.

~12.11.2017 

  토요일 저녁 10시. 동기 한국어 선생님들 단톡방은 보통 이 시간쯤 부터 활기가 넘친다. 대부분 동남아나 그 근방에 파견된 분들이 많은 까닭이다. 아는 바로는 나를 빼고 전부 자취 중이시라 어떻게 먹는가? 무엇을 먹는가?가 종종 화제가 된다. 내 호떡 얘기를 하자면, 첫 번째 호떡은 장렬하게 실패했다. 원래 호떡 반죽이 질다지만 질어도 너무 질었다. 소는 계피에 황설탕, 이름 모를 씨앗만 넣었는데, 반죽이 질다보니 많이 넣지도 못했다. 결과물=한 입만 물어도 시큼하게 발효된 술맛이 확 올라오는 납작하고 딱딱한 호떡. 반죽을 거의 하룻밤 동안 숙성 시킨게 패인인지, 아니면 물을 너무 많이 넣었던게 패인인지 통 알수가 없었다. 시식해달라고 하숙집 식구들에게 건네니 다들 예의상 괜찮다고는 해준다. 반죽이 잘 부풀지 않았다고 하니 아줌마는 이스트를 조금 더 넣어 보라고 조언했다. 은행거리 근처에 있는 향신료 및 견과류 가게도 추천해주었다. 남은 호떡을 오며가며 먹어치우고 수요일 오후에 추천 받은 가게로 땅콩을 사러갔다. 두 번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다들 맛있게 먹은 것 같아 기쁘다.



  수요일 오후에 시간을 낼 수 있었던 건 그날 오전에 학교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화요일에 방문한 코워커가 수요일에 행사가 있다고 해서 오케이! 했다. 다음 날 서류 작업 좀 하다가 시간을 맞춰서 한복으로 갈아 입었다. A선생님이 예쁘다며 칭찬을 엄청 해줬다. 같이 찍은 사진을 보니 그냥 나를 유달리 챙겨주는 A 선생님이라 할 수 있었던 멘트인 것 같다. 나는 지금 내 머리가 마음에 들지만, 한복과는 잘 어울리기 힘든 스타일인 듯하다. 하여간 안 그래도 동양인이라 눈에 띄는데 치맛자락이 풍성풍성한 한복을 입고 있으니 혼자 할로윈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강당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선집중. 참석하고 보니 38주년 개교 기념 행사였다. 각 학과 우수학생들 및 기타 우수자들 표창도 하고, 학장 및 귀빈 인사도 있고... 학장님이 또 내 이름을 불러서 또 일어나서 또 인사를 했다. 안 그래도 다음주 토요일부터 수업 시작인데 부담이 백만배다. 뭔가 "내가 이 정도에요 동네 사람들!"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그러다보니 영화의 날이 취소된게 오히려 다행인 것 같다. 그만큼 수업 준비에 더 신경을 쓸 수 있게 된 셈이니까. 팜플렛이며 설문지며 포스터며 다 만들어 두고 장소만 확정하면 되는 상태였는데 코워커가 도무지 답을 주지 않았다. 학교도 학기말이라 정신이 없고. 그냥 다음 번으로 미루자고 해야겠다 싶었는데 마침 목요일(!)에 홍보를 돌다 만난 코워커가 그냥 다음 기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쉬운 척했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자막 수정한다고 날밤 샜던게 말짱 꽝이 되긴 했지만 그 정도야 뭐. 그리고 다시 생각해보니, 부산행이야 그렇다쳐도 한국의 분단을 테마로 해서 선정한 태극기 휘날리며가 썩 절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사에 빨갱이 새끼들! 공산주의자 개새끼들!! 등등이 남발 되는데 이 나라 정서상 나도 관객들도 서로 어색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뭐 어쨌든 기타 등등은 다 준비해 놨으니 내년에는 더 매끄럽게 준비하고 실행할 수 있겠지.


  아, 홍보. 역시 화요일에 코워커가 말했다. 강의실을 돌며 직접 맨투맨으로 학생들을 만나서 다음 주 토요일부터 시작하는 한국어 수업을 홍보하자는 거다. 아마 코워커 딴에는 한국어 코스 신청자가 별로 없어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나야 뭐 수강생 수야 상관 없는데. 오히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소그룹이 나을 것 같고. 하여간 그 얘기를 듣고 아니 왜 포스터도 나왔는데 그냥 포스터 막 붙이면 되지 왜 굳이???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학생들과(정치학과 학생들 외의 학생들과) 처음 만남을 그렇게 약장사처럼 해야하나?? 관계형성에 별로 안 좋지 않을까?? 솔직한 말로, 간지가 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막상 돌아다녀보니 나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강의실을 직접 들어가서 보니 컴퓨터 실습실도 있고, 삐까뻔쩍한 어학실도 있고(내가 쓸 수 있으려나 싶지만), 자그마한게 딱 소규모 그룹 수업하기 좋은 곳도 있고, 다양했다. 이번 4주 코스나 계절학기 코스에는 강의실 여유가 있을테니 원하는 강의실을 쓰게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 수업 막바지라고 책거리 하듯이 음식을 나눠 먹는 그룹도 있었고, 강의실마다 아이들을 데려온 학생들도 많았다. 갓난 아이부터 막 걷는 아이, 초등 학생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등등. 다른 학생들이나 교수들이나 아무도 껄끄러워하지 않았다. 참 좋아보였는데, 학교에 아이들을 위한 작은 공간이 따로 마련 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얼결에 현장사업 두 번째 아이디어를 얻었다(첫 번째는 동아리실 개보수). 체, 카스트로, 차베스, 오르테가가 사면벽을 둘러 싼 학생회(?)실도 방문할 수 있었다.

  짧은 표현 몇 개를 함께 말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라는 발음을 어려워하는 걸 보니 가르칠 때 그런 부분을 좀 더 신경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반면에 사랑해요는 다들 쉽게 했다ㅎㅎ. 한류에 관심있는 학생들은 표정과 리액션에서부터 티가 많이 났다ㅎㅎ 그나마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이 친구들와 어떻게 잘 으쌰으쌰 할 수 있는, 즐거운 수업을 만들 수 있을까 뭔가 책임감과 부담감과 사명감이 부글부글...까지는 아니고 보글보글했다. 물론 (당연히)수업 관련 설명 및 안내는 ㅐㄴ가 하지는 않고, 코워커의 조교인 D가 해주었다. 목요일 오전(오후 과정은 K와 돔. 배가 조금 더 불러서 쉬어야 되지 않나, 싶었지만), 금요일 저녁 홍보를 함께 마치고 내일이 토요일이라 다행이야ㅎㅎ 하니 D 왈, 테오, 너 내일도 나와야 됨;; 코워커가 말 안했어? 그래, 사실 내심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확인 사살을 받으니 윽... 


  하여간 그래서 오늘, 토요일 아침부터 학교에 갔다. 그래도 나름 짬이 생겼다고 좀 더 수월했다. 한 시간정도 홍보를 돌고나서 아침을 안 먹었다는 D와 함께 학교 매점...카페테리아... 학식이 짬뽕 된 까페틴에서 가요삔또와 치즈로 아점을 먹었다. 당연히 도움 받은 내가 샀다. 얘기하다가 중간중간 잘 이해가 안 되면 애기들 한테 설명하듯이 해달라고 부탁했다ㅎㅎ. OJT 기간에 참여했던 졸업식에서 졸업한 D는 빨간머리와 때마다 바뀌는 손톱의 멋쟁이다. 우리 나이로는 스물 넷 쯤 되었는데 2살 된 아들이 있다. 나름 개신교라고 했더나 춤 안추냐고 해서 포르께 노??? 왜 안 돼??라고 되물었다. 사실 내 무브는 춤춘다기 보다 그냥 움직이는 거에 가깝지만ㅎㅎ 그래서 그런지 아까 8시 30분 쯤에 춤추러 오겠냐고 초대해 주었다. 요 끼에로!!!!!!!!! 라고 답을 보내고 눈두덩이에 펄까지 얹었다가, 아무래도 너무 늦은 시간에 돌아오게 될 것 같아(=그런데 나는 아직 수업 준비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그냥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다음 번에 보자고 거절했다. 그 와중에 티비에서는 대사관에서 열었던 한국 문화의 날 행사 (아마 갈레리아에서 한 듯)가 방송 되고ㅋㅋㅋㅋㅋ

  오늘 텔레를 거의 하루 종일 켜두고 있었다. 물론 이어폰을 껴둔 채로. 영 불편해서 2미터짜리 연장 케이블을 주문했다. 혜진이 소포를 보낸다고 몇 주 전부터 준비를 많이 하고 있는데, 같이 넣어 달라고 부탁할 셈이다. 케이블이 오면 침대에 누워서 이어폰을 끼고 티비를 볼 수 있다!! 


기타

1. 매번 프린트물 나눠주기도 번거로울 것 같고, 학생들에게 그때그때 뽑아오라고 하면 복사비가 부담스러울 것 같아 연습문제와 활동 자료, 숙제 등등을 모두 포함한 교재를 편집 중이다.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대단히 까다롭다. 수업계획서는 물론 있지만, 세안이 보다 확실하게 잡혀야 더 매끄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2. 미국에 있는 하숙집 아줌마네 부모님이 12월 하순에 니카라과로 아주 돌아온다고 한다! 20년을 미국에서 머물렀다고 하니 엄청난 시간이다. 부모님은 서너 블록 정도 떨어진 집에서 살 예정이고, D와 E도 그 집에서 맡아 기를 예정이라고 한다. 뭐 3블록이면 바로 근처니 그래도 거의 매일 보긴 할 것 같다.


3. 파견 한 달이 지났다. 니카라과에 온 지 세 달 가까이 되간다. 허...  시간이 정말 빠르다. 선임 단원들말로는 6개월 정도면 귀가 어느 정도 뚫린다던데, 나는 눈치+구글 번역기가 잘 이해할 수 있게 번역투 한국어를 구사하는 능력만 늘고 있다. 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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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7시쯤 느지막하게 일어나 혜진과 영상통화를 하고 커피와 빵 두 개(하나는 잼이 든 삐꼬)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은 줄... 알았으나, 씻고 나오니 E가 아침 먹으라고 부른다. 닭고기 나까따말을 먹었다. 전에도 쓴 것 같은데, 나까따말은 쌀, 옥수수가루, 고기, 감자나 토마토 등등의 야채를 바나나잎에 넣어 찐 음식이다.다큐멘터리 같은 데서는 나까따말을 주말에 먹는 특식~ 뭐 이렇게 소개하는데,보면 주말에 밥하기 귀찮을 때 간편하게 밖에서 사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개념에 가까운 것 같다. 하여간 난 좋아한다.

  유치/유년부 예배 안 가려고 했는데 그냥 갔다. 다음 주부터 주말 수업을 시작하니 또 언제 가나 싶어서. 다음 달 10에 문학의 밤 스러운 행사가 있다고 애들이 연극(소시오 드라마라고 하더라ㅋㅋㅋㅋ 그라나다 수업이 생각남) 준비하는 걸 구경했다. 유치부 애들은 삭개오 얘기를, 유년부 애들은 사마리아 여인 얘기를 맡았다. 많이 어수선했지만 그래도 흥미로웠다.

  애들이랑 돌아왔다가 콩 사러 나갔다. 시험 삼아 콩나물을 길러볼 생각이다. 슈퍼가는 길에 길 건너 초등 학생 무리가 치니따~ 어쩌구 하길래 꼬레아나, 치까쓰!(한국 사람이다 기집애들아~~ 그 나이 또래 남자에들이 제일 부들부들 하는 말 중에 하나인 듯)하니 막 자기들끼리 왁왁대는데 음 뭔 말인지 못 알아 듣겠군~하고 그냥 마트로 갔다. 검은 콩이 있길래 일단 그걸 사고 플라스틱 그릇? 대야? 용기? 도 두 어개 샀다. 돌아와서 콩을 씻어 놓고 보니 영 상태가 안 좋아서 잘 될까 걱정지만 흠. 일단 불리는 중이다. 보이 아 베르. 어떻게 되는지 한 번 봐야지. 


  오늘의 할 일: 수업 시작하면 정신 없을 것 같으니 페이스북 게시글 여분 미리 만들어 두기/ 세안 대강이라도 짜두기!//가능하면 교재 제작 50%까지 완료하기.


내가 좋아하는 에스뗄리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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