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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에스뗄리 35일 차

by 테오∞ 2017. 11. 15.

  하루에 몇 자라도 적어 놓자. 도피일 수도 있다. 시험 공부해야 할 판에 방 치우는 것처럼. 뭐 쨌건. 티비 앞에 앉아서 뉴스를 배경음악 삼아서 타자를 친다.

  어제 낮에 해가 엄청 쨍쨍 하길래 오늘은 아예 출근하면서부터 코이카 바막 말고 조끼를 입고 나갔다. 주머니에 자크가 있어 유용하긴하지만 디자인이 참... 그래도 뭐 열심히 입고 다녀야지 별 수 있나. 베네수엘라가 진짜 난리 인가 보다. 여러 채널의 뉴스마다 한 꼭지씩은 꼭 베네수엘라 얘기를 하고 있다. 방금 불현듯 생각나서 은행 잔고를 확인해봤는데, 야금야금 쓴 돈이 생각보다 많다. 문제의 팥나물 화분=요강도 그렇고. 대충 내 소비 습관을 보자니 평소에는 아끼다가 갑자기 핀트가 나가면 좀 이상한데서 돈 쓰는 일이 잦은 것 같다. 팥은 다 썩어서 냄새가 나기에 오늘 아침에 버렸다. 궁금해하던 Y가 아쉬워했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오락가락하는 기온? 배수문제? 팥의 문제? 물의 문제? 일단 다음 달께 귀양다리 생활에서 벗어나면 마나과에서 콩나물 콩을 좀 찾아봐야겠다.

  생각해보니 초 값도 은근히 드는 것 같다. 저녁에 들어와서 자기 전까지는 매번 켜두니 향초가 한 주도 못 간다. 향초는 지금 내 삶의 사치품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물론 초콜렛이다. 카카오가 나는 나라인데도 마트에서 집어드는 초콜릿은 다 싸지 않은 것들 뿐이다. 내가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로 장바구니를 꽉꽉 채워 나오는 마트 앞에는 늘 구걸하는 사람들이 있다. 좀 더 서민 친화적인 슈퍼라 그런지 빨리 앞에는 없지만, 꼴로리아나 세고비야 앞에는 늘 누군가가 있다. 알량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방에 돌아와 글로벌 대기업의 초콜렛을 으적으적 먹는다. 슬슬 턱에 트러블이 올라 오는 걸보니 곧 생리가 터질 것 같다.

  점심 시간에 자전거 자물쇠를 풀고 있는데 하교하던 근처 초등학교 오전반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올라, 한 마디를 던지니 열 마디가 넘는 말이 와다다 쏟아진다. 미안, 못 알아 듣겠어. 스페인어 잘 못 해-하니 실망하는 눈빛들. 괜히 미안해졌다. 너희 때문에(덕분에?) 오늘도 티비를 친구 삼는다.

  동기 쌤과 전화를 했는데, 하다하다 오늘은 야외 수업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얘기를 듣다보니 내년 학기 중에 수업 장소를 어떻게 확보해야하나 걱정이다. 아침반, 오후반, 저녁반, 토요반으로 꽉꽉 들어찬 강의실 중에 내 자리는 어디일까. 일단 당장 닥친 수업부터 조금씩 풀어나가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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