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날. 지금은 오후 4시 10분경이다. D가 방에 와서 같이 좀 놀다가 핸드폰을 주고 알아서 놀라고 하고 타자를 친다. 내 방에서는 신발을 벗으라고 지난 주에 얘기해 두어서 신발은 잘 벗는데 문제는 발 냄새, 안 씻은 개냄새가 난다. 하긴 하루 종일 양말에 운동화를 벗지 않고 있으니 냄새가 날만도 하다.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 발로 침대에 올라가길래 (모기장 텐트가 매력적으로 보였나보다. 하긴 나도 어릴 때 텐트나 그 비스무리 한 것에 환장했지) 기겁하고 일단 요가 매트 위에서 놀라고 했는데 매트를 어떻게 빨아야 할까? 아무튼 이따 저녁때 다시 바닥청소를 한 번 더 해야할 것 같다. 여튼 장례식이 있던 OJT 때부터 예감이 들었는데, D와 E는 그냥 이 집에서 클 것 같다. 그때 아줌마는 입양처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지만 입양 보내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 집 사람들 성격 상 맡아서 키울 확률이 못해도 80%인 듯. 처음에는 애들과 금방 헤어질 줄 알고 그냥 오냐오냐 했는데 계속 같이 지낸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문제는 애들이 이미 (상대적으로) 관대한 나에게 익숙해졌다는 것. 아아아아 첫 단추가 중요한 데 으으.
하여간 아까 새벽에 잠깐 깨서 타자치다가 다시 잠들었다. 아침 9시 쯤 느긋하게 일어났다. . 핸드폰 진동 때문에 더 잘 수가 없었다. 혜진이었다. 층메 Y는 오전 근무가 있다고 출근해서 맘 놓고 이어폰 없이 40분 정도 영상통화를 했다. 주로 내가 투덜거리고 혜진은 들었다. 아 개냄새 진짜 돌겠네. 하여간 통화를 마치고 내려가서 계피빵을 먹고 다시 올라와서 좀 딩가딩가 하다가 점심을 먹고 머리를 자르러 갔다.
K가 집 근처 미용실을 알려줬는데 도통 못 찾겠어서 그냥 헤맸다. 눈에 띄는 데가 있으면 그냥 들어가려고. 그런데 망자의 날이라서 그런지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았다. 겨우 찾은 미용실에서는 주인 아줌마가 손님 머리를 열심말고 있었는데, 나에게 2시 반에 다시 오라길래 걍 돌아나왔다. 빠르께 센뜨럴 근처에서 겨우 문을 연 살롱 하나를 발견하고 머리만 자르는 데 얼마냐고 물었다. 80꼬르도바를 달란다. 전에 Aj쌤이 그라나다에서 이발하신 값을 떠올려보면 생각보다 비쌌지만 그럭저럭 납득되는 가격이라 그냥 들어갔다.
직원만 대여섯명 되는 큰 미용실이었다. 손님 두 명이 파마 중이었다. 바론처럼 짧게 잘라달라고 하니 카탈로그를 가져와 보여 주길래 가져간 틸다 스윈튼 사진을 보여주니 끄덕끄덕. 안경을 벗고 조금 졸았다. 나는 머리를 자르면 늘 존다. 아오 이따 향초라도 사다 놔야겠다. 무튼 스몰토크가 없어서 좋았다. 샴푸하면서 머리 마사지까지 같이 해주는 한국 미용실이 조금 그리웠지만 뭐 이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끝나고 나름 신경 써 준다고 헤어제품을 발라서 머리를 소가 핥은 것처럼 만들어 놓은게 조금 에러였지만. 하여간 잘라준 사람에게 물으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다듬어야 할 것 같단다. 나중에 돈 아까우면 그냥 바리깡을 살 생각으로 끄덕끄덕했다.
돌아오니 다들 헉 하면서 로까라고 고개를 젓는다. 음. 방으로 올라와서 머리를 감았다. 엎드려 절 받기로 자신감을 좀 회복하기 위해 과 동기 방에 사진을 보냈다. 친절한 동기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어서 다시 자신감 상승.
오늘 남은 하루의 일정; 바닥 청소(걸레질 필수)/영화 프로그램 준비/내일 코워커와 협의할 사항 미리 정리. 스페인어는 또 언제 공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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