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 - 01/11
현재 시간 11월 2일 새벽 4시 15분. 오늘은 Día de muerto, 망자의 날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다. 어제 저녁 먹고 간만에 맘 편하게 룰루랄라하다가 일찍 자서 그런지 눈이 일찍 떠졌다. 여전히 밖에서는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 하까 화장실 다녀 오면서 보니 별이 무척 밝다. 사막의 하늘만큼은 아니겠지만 도시에서 살던 내게는 이 정도면 플라네타리움급이다. 하여간 시간 날 때 몇 자 친다.
1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럭저럭 여러 일들이 있었다. 기관에서는 여전히 주중 8시-5시 30분까지 근무 중이다. 4번의 문화수업을 각각 다른 주제로 (무사히)진행했고, 여전히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서류작업 중이고,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세미나에도 참석했고, 드디어 한국어 초급 수업(4주 24시간 코스) 포스터가 나와서 학생등록을 받고 있고, 페이스북 페이지도 그래도 꾸준히 업데이트 중이다.
기관까지 출퇴근은 기상 상태와 수업, 짐, 지각 여부에 따라 도보, 자전거, 택시 세 방법을 돌아면서 하고 있다. 걸으면 25~30분, 자전거로는 넉넉 잡아 15~20분(학교 가는 길이 오르막임.+나의 체력), 택시로는 아주 돌아가지 않으면(합승 시스템임) 15꼬르도바에 10분 정도 걸린다. 버스는 빠르께 센트럴 근처에서 4꼬르도바에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 OJT때 까렌과 함께 탄 다음에는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조만간 개척해 볼 생각이다. 지름길 겸 샛길을 뚫어서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걷고 있다. 이번 주 월요일에는 마침 집에 있던 S아저씨가 차를 태워줬는데, 내가 걸어 다닐 때는 강(이라는 이름의 시내) 옆 샛길을 이용하기도 한다니까 거기 약쟁이들이랑 주정뱅이들이 있으니까 어두울 때는 조심하라고 했다. 당연히 겁 많은 나는 해가 질 무렵에는 그 길로 아예 다니지 않는다. 어쨌거나지금 내가 그 길에서 제일 신경 써서 피해 다니는 건 이미 납작하게 퍼져 있는 개똥 및 말똥이다. 끄으.
나는 지금 대학원 사무실에 얹혀 살고 있다. 안 쪽 사무실에는 3명의 교수들이 있는데, A와 M, D다. 앞의 두 사람은 가끔 내가 있는 바깥 사무실에서 논문 지도를 하는데 까이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남 일 같지 않고 무섭다. 하여간 M은 불어교수가 확실한데, A와 D는 뭘 가르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대놓고 물어보기도 뭐하고. 아무튼 혜진 뻘인 A는 파견 될 때 승합차 안에 있던 9인의 사람들 중 하나다. 오며가며 나를 많이 신경 써준다. 말 한 마디라도 더 걸어주는 것도 A다. M은 콧대가 높다고 할까, 깍쟁이 같달까. 아직 A보다는 낯설다. 허구헌날 노란 학교 카라티만 입고 다녀서 조교인가 했는데 docente였던 키 작은 D는 유일한 청일점이다. 웃는 소리가 엄청 특이하다. 이외에도 오후 쯤에 출몰하는 학생인지 조교인지 둘 다인지 알 수 없는, 맨날 나에게 영어로 인사하는 예쁘장한 쎄뇨리따가 있다.
그러고보니 그 동안 기관에서도 이런 저런 사람들과 얼굴을 익혔다. 매일 아침 방을 청소해주는 언니, 코워커 사무실의 사람들(메인 조교인 D 말고도 짬이 좀 덜 찬 조교 H, 책상에 맥이 딱 올라가 있는 뭔가 엔지니어 같은 아저씨, 포스터 디자인해 준 아저씨), 다른 교수들(특히 문화 수업 관련해서 자주 마주친 정치학과 선생님들), 맨날 물이나 음료수를 사러 왔다갔다하며 보는 빨강 까페틴 아줌마 등등. 하여간 아직 본격적으로 한국어 수업을 하고 있지는 않다보니 학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 동양인은 뭘까, 맨날 학교에 와서 뭐 컴퓨터 들여다보고 그러는 것 같기는 한데 도통 알 수가 없네?의 눈빛을 보낸다. 아직 현지어도 더듬거리면서 대뜸 먼저 문화수업을 하겠다고 입을 턴 것도, 이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놈의 인정욕구. 하여간 4번의 수업을 모두 마친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비해 좀 과욕을 부렸던 것 같다. 아니, 부렸다. 그래도 내 성격상 아예 이렇게 질러 놓지 않았으면 돌다리만 두드리다가 시간만 허비했을게 뻔하니 결과적으로는 ++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수업 얘기는 나중에 따로 꼭지를 빼서 더 하기로 하고 생활 부분을 얘기하자면,
1. 층메가 생김: 1층 바깥쪽 방을 쓰고 있던 Y가 내 옆 방으로 이사 왔다. 그녀는 나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고 조금 늦게 퇴근하는데, 1층에서 사람들이 계속 왔다갔다하고 애들이 떠들고 하는 소리에 그 동안 잘 쉬지 못했던 것 같다. 주중에 아줌마가 옆 방 괜찮겠냐고 물어봐서 암시롱않다고 (내 방에서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안 괜찮을게 뭔가) 말했더니 지난 일요일 유치부 예배에 다녀온 사이 이사 끝. 이사 다음 날 아침 Y가 나를 보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드디어 닭소리의 고충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생겨서 기쁘다.
2. S아저씨 생일: 31일이 아저씨 생일이었다. 주중이고, 생일축하메인요리는 아줌마가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냥 모두에게 토요일 점심을 대접했다. 내 생에 처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어 본 잡채는 후추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조금 매웠다. 버섯이 없으니 고기를 좀 더 늘렸어도 좋았을 것 같다. 다이소 젓가락 한 뭉치가 열일함. 다들 젓가락과 함께 고군분투했다.
생일 전 날 마침 짬이 나서(여당 전당 대회로 오후 근무 쉼. 사람들 빗방울 떨어지는 데도 행진하고 밤에 막 빠르께 쎈뜨랄에서 불꽃놀이하고 장난 없었다. 불꽃놀이는 소리만 나는 폭죽이 아니라 진짜 색색의 불꽃놀이었음. 애들이랑 2층에 올라와서 같이 봤다. 5일이 선거인데 전당 대회를 지금하면 선거법 위반 아닌가? 싶긴 했지만) 리브레리아에 가서 사탕 목걸잌ㅋㅋㅋㅋ재료와 생일카드를 준비했다.
마흔 여덟번째 생일 당일 아저씨는 마나과에 갔다가 8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아줌마가 배고프면 먼저 조금 먹으라고 했는데 괜찮다고 버텼다. E는 아이들과 식당에 풍선 장식 붙이고 K는 요리를 도왔다. 나는 별로 한 일이 없다. 도와줄까? 했는데 괜찮다고해서 그런가보다하고 올라와서 수업준비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여기 문화 상 도와달라는 말을 돌려말한 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격려품 상자에 있던 초코파이 한 상자와 사탕목걸잌ㅋㅋㅋ가 내가 준비한 선물이었다. 상자만 덜렁 있는게 보기 그랬는지 E가 포장해 주었다. 파란 리본까지 붙여서.
아저씨가 돌아오고 식당에서 생일축하 시간을 가졌다. 밥도 케잌도 무척 맛있었다. 닭과 소고기, 올리브, 건포도 등등이 들어간 알 수 없는 이름의 요리였는데, 의심병이 도져서 쬐끔씩 떠 먹어보면서 세 그릇이나 먹었다. 남은 음식으로 다음 날 점심까지 해결했다.
3. 교회: 이번 주 일요일(29일), 오전에는 유치/유년부 예배에 갔다. 다 같이 30분 정도 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달란트 시장을 했다(지난 토요일에 한 건 해당 지역 아이들 대상). 간식은 딸기 아이스크림. 나도 먹었다. 부장교사스러운 분은 아무리봐도 전도사인듯 한 남펀이랑 2008년인가에 카자흐스탄에 다녀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들어서 카자흐스탄에서 왔다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하여간, 재작년인가 선교하러 가려고 했는데 아들 비자가 안 나와서 못 갔다고. 그렇군. 나오는 데 목사님이(유치/유년부 예배도 맡으심) 이따 저녁 때 오냐고 물어봤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집에서 쉬고 싶었는데 입에서 나간 말은 '당연하죠'. 입이 방정이다 진짜.
집에 와서 애들이랑 계속 놀다가 졸다가 했다. 애들한테 휴대폰 맡겨 놓고 알아서 놀라고 하는 부모들을 탐탁치않게 여겼는데, 정작 애들이랑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있자니 그 마음을 알겠다. 절대 멈추지 않는다 4시 40분에 교회로 갔다. 성찬식이 있어서 1시간 일찍 시작한 것이다. 나 같은 외부인이나 애들은 따로 앉고 나머지 교인들은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찬송 여러곡, 성경 구절, 짧은 설교와 함께 빵과 술을 나눴다. 한 명씩 앞으로 나가는 게 아니라 옆 사람에게 전달전달하는 방식. 뭔가 초기 교회가 이랬을까 싶기도 했다. 하여간 나는 외부인이라 안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성찬식 때마다 망부석처럼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는데 정작 아무도 물어 보지 않으니 좀 소외감이 느껴졌다. 아, 마지막 쯤 사람들이 헌금을 했다. 바구니가 도는 걸 보고 딱 준비하고 있었는데 외부인석(??)까지는 헌금 바구니가 안 왔다. 그래서 그냥 입 딱 씻고 있었다. 본 예배는 원래대로 6시 시작. 시작 전에 잠깐 시간이 남아서 근처 구멍가게에 갔다. E가 착하게 기다린 애들과 나한테 과자 한 개씩을 사줬다.
오늘은 교회 16주년인가 15주년인가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의 설교 말씀은 고린도전서 15장 58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예배 중에 갑자기 울컥해서 열심히 딴 생각을 했다. 어쨌거나 창립기념으로 돼지 두마리를 잡아서(이건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음. 애들이 하도 얘기를 해서) 예배 끝나고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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