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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에스뗄리 6~7일 차

by 테오∞ 2017. 10. 18.

16~17/10/2017


  손바닥과 손가락 사이 이곳저곳에 물집이 잡혔다. 어제부로 자전거로 출퇴근(매번 집에서 점심을 먹으니 왕복2회)중인데 길 포장상태가 썩 좋지 않아 그런 듯하다. 일단 임시로 국내교육 때 받았던 목장갑(소방 교육 때 받았던)을 쓰고 있다. 장갑을 껴도 먼지는 막을 수 없는지 손주름 사이사이에 뭔가 막이 한 꺼풀씩 씌인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래도 손 세정제를 하나 사서 학교에 두고 쓰면 좋을 것 같다.


  월요일 아침, 커피를 마시는 데 Y와 K가 깔깔대며 들어왔다. 스포츠 레깅스 차림새였는데, 오늘 처음으로 둘이 같이 헬스장에 다녀왔다고 한다. K가 걷는 모습을 보니 딱 감이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스쿼트를 했다고 한다. 오는 길에 세 번이나 넘어졌다고. 아이고. 내일이면 더 아플거라고 얘기해주었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기세 등등하게 자전거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는데 숨이 가빴다. 정말 그간 운동 부족이었던게 바로바로 표가 나는 것 같았다. 언덕에서는 끌바를 했다. 게다가 길이 좋지 않아 그런지 엉덩이도 손도 아팠다. 사무소에서 자전거를 탈 때 꼭 쓰라고 받은 헬멧을 썼는데, 자전거에 비해 너무 튀는 것 같아 좀 언밸런스하다고 생각했다. 하여간 오전 중에는 드디어 한국어 코스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했다. 나는 원체 게으른 인종이라, 아예 이렇게 공개적으로 뭔가 합니다! 하지 않으면 도통 빠릿빠릿하게 일을 하지 못 한다. 소문도 낼 대로 냈으니 보는 눈들이 신경 쓰여서라도 꾸준히 하리라 기대한다. 

  여튼 다시 자전거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갔다. 내리막 길이라 그런지 10분 정도 밖에 안 걸렸다. 걱정할까 첨언하자면 내리막길에서는 꼬박꼬박 브레이크를 잡고 가속도가 더 나지 않게 조심하고 있다(그리고 차도). 점심으로 내가 선물한 스팸(추석 격려품에 들어 있었음)과 다른 양념을 넣은 푸실리 파스타가 나왔는데 무척 맛있었다! 약간 야채가 더 있었다면 완벽했을듯 하지만 그대로도 굉장한 맛이었다.

  한국 관련 자료를 가져가서 책상 옆에 붙여두었는데 지나가던 청년하나가 한국어 수업하냐고 물었다. 관심을 보인 첫 학생! 당장 명함을 주고 학기 끝난 뒤에 정식으로 시작하지만 그동안 문화 수업들을 좀 할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뭔가 한국 간식이라도 가져왔으면 들려보냈을 텐데. 아쉬웠다. 뭔가 수업을 이제 시작할 거라는 게 실감이 나서 기분이 좀 들뜨기도 하고 요상했다. 

  저녁 먹을 때 Y가 이번 주 토요일에 교회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겠냐고 물어서 가겠다고 했다. 에스뗄리 외곽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저녁에 S 아저씨가 라우터에 새로 비밀번호를 설정해서 가져다 주었다. 어쩐지 좀 느려졌다했더니 그 동안은 계속 주변 이웃들에게 무료 인터넷을 제공 중이었던 것.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새로 바꾼 라우터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 정 안 되면 집 앞 구멍가게에서 데이터 충전해서 급한 연락을 해결하면 되니까(아니면 학교에서)~ 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화요일 아침에도 여전히 인터넷이 문제였다. 내 방 라우터만이 아니라 온 집안의 인터넷이 다 접속 불량이었다. 부엌에서 아침을 먹는데 아저씨가 점심으로 카레여왕(역시 추석격려품을 선물함)을 먹겠다고 박스를 들고나왔다. 스윗카레를 들고 나와서 다른 종류 두 개를 알려주었더니 아저씨는 매콤한 닭고기 맛을 골랐다. 조금 매울거라고 이야기는 했다.  

  출근해서는 다음주 문화 수업 교안을 대강 작성하고 관련 있는 페이스북 계정들에 페이지 홍보 요청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던 중 코워커가 한국어 수업 홍보포스터를 메일로 보내주었다. 코이카 로고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첨부요청을 했다. 학교 정문 앞에 있는 피씨방(이라기엔 컴퓨터 4대인가가 전부)겸 복사집에서 주거계약서와 영수증 등등을 출력했다. 코워커 조교인 D에게 파일을 보내면 무료로 프린터 할 수 있지만 수업 관련 내용이 아니라(그리고 금액이나 개인정보가 나와 있는지라) 좀 부담스러워서 그냥 밖에서 뽑았다. 주인 아저씨가 내 OTG(숭x여x학부모회라고 써있음)가 예쁘다고 칭찬(?)해 주었다. 프린터는 한 쪽에 2꼬르도바다. 

  점심을 먹으면서 Y, K와 얘기했다. 내 머리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잘라야 한다고 하고 삭발 시절 사진 보여주었다. 그건 마음에 안 든다고ㅋㅋㅋㅋ 가족들 안부를 묻기에 잘 지낸다고 대답했다. 병태 사진을 보여줬는데 둘 다 나보다 나이 들어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잘 생겼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립서비스 같았지만 일단 고맙다고는 해줬다. 내가 떨떠름해 하자 칭찬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는데, 입이 섹시하다고 해서 빵 터졌다. 섹시한 입이란 어떤 건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뭐 이렇게 얘기한 Y는 무척 몸이 좋은 남친이 있다. 동갑인 Y와 해가 지날 수록 내 맘 같지 않은 몸에 대해 동질감을 나누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학교로 갔다.

  잠긴 문을 여니 뭐가 계속 시끄럽게 삑삑거린다. 옆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어제 그 청년이 뭐라 설명해 주는 데 뭔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 뭘 끄고 싶어도 혹시 뭘 잘못 건드리는 게 아닐까싶어 다른 사람들이 빨리 점심을 먹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마침 D가 돌아와서 이게 뭔 소리냐고 하니 정전이라 그렇다고 얘기를 해준다. 컴퓨터랑 다른 전원들을 모두 뽑으라고. 트랜지스터들을 모두 끄니 소리도 사라졌다.

  얼마간 정전일 거라고 하는데 다행히 노트북을 챙겨왔던지라 일을 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파일들을 정리하고 동기화 했다. 근무일정표를 막 제작하고 있는 도중에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 근데 이제는 내 자리의 컴퓨터를 가져간다. 다른 사람이 써야 한다고. 아마 지난 주에 코워커가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내 노트북 들고 다니면 되니 뭐 괜찮다고 얘기했었던지라 이번에도 별 말 없이 끄덕끄덕했다. 문제는 내 새 노트북에는 랜선포트가 없다는 건데, 내일 바로 교수용 와이파이 접속권을 달라고 해야할 것 같다. 

  집에 돌아와보니 어제 저녁부터 안 되던 인터넷 문제가 해결되어 있다. 내 방 라우터에 케이블을 연결 해 두었던 탓이라고 한다. 그냥 전원만 연결하면 된다고. 조금 뻘쭘했던게, 케이블 연결을 해야한다고 우겼던 게 나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오늘 점심(카레*왕 매콤한 닭고기맛) 어땠냐고 물으니 아저씨가 엄청 매웠다고 덧붙인다. 매운 맛에 대한 역치가 내 생각보다 많이 낮은 것 같다. 앞으로 음식 관련 얘기나 추천을 할 때 좀 더 신경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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