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테오의 코이카/아디오스, 니카라과

본국대피 결정_니카라과 277일 차

by 테오∞ 2018. 5. 20.

-19.05.2018 토요일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대사관저에서 거의 일 년 만에 먹는 것 같은 닭강정을 씹으면서, 대사님과 과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상은 슬슬 확신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임시 유숙소로 쓰고 있는 호텔 로비로 모두 모이라는 공지를 받았을 때 생각했다. 가겠구나. 가는구나 정말. 한국으로.

  니카라과 모든 단원들은 내일 모레, 월요일 오전 비행기를 타고 멕시코를 두 번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 간다. 사무소의 일시 귀국 조치. 2011년 아랍의 봄에도, 네팔 대지진 때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현지 상황이 안정되고 난 뒤 (원하는)단원들은 해당 국가로 다시 파견되었었다는데. 나는 니카라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대기기간은 최대 3개월, 그 안에 상황이 호전 되면 당연히 니카라과로 오는 것이고, 사무소에서 활동 불가 결정을 내리면 선택지는 두 가지. 사무소에서 권하는 다른 나라로 파견되거나, 계약 종료를 하거나. 

  1년도 채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기분이 이상하다.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만 같다. 모두를 뒤에 두고. 그렇게 비장하게 말할 계재는 아니다만. 사실 정말로, 사무소에서 안전 포기 각서를 쓰고 남을 사람은 남으라고 하면 남을 생각도 했었다. 사무소에서야 단원 안전을 우선시하니 그럴 일이야 절대 없었겠지만. 

  지인들과 학생들에게 연락을 돌리면서, 한 발 늦게 마나과로 무사히 대피한 마나미 상 및 다른 자이카 단원들과 호텔 부지 안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자이카는 '그' 온두라스에서도 활동 중이라고 하니, 아마 계속 니카라과에 머물게 될 것 같다. 마나미 상은 선물이라며 비누곽을 건넸다. 안에는 종이학 귀걸이가 들어있었다. 다시 돌아올 때, 김을 왕창 사서 선물해야지. 학생들과 오래 전부터 약속했던 라면 모임에서 쓸 스텐 젓가락을 왕창 쟁여야지. 로꼬한 하숙집 식구들에게 으쓱대며 맛 보여줄 한국 술도 사야지. 한국에서 니카라과를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3개월 동안.


  동기 및 단원 선생님들의 주옥 같은 말말말: 아끼다 똥 된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하자. 들으면서 생각난 로알드 달의 문장. 그리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는 자책. "나는 아버지가 그렇게 흥분할 때가 좋았다. 그 어린 시절에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인생에서 뭔가에 열광할 수 있는 사람이 될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뭔가 흥미가 당기는게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전속력으로 쫓아가라고 가르쳤다. 두 팔로 그걸 끌어안아. 포옹해. 사랑해. 무엇보다도 열정을 다 쏟아. 미지근한 건 안좋아. 뜨거운 것도 안좋아. 오로지 백열로 타오를만큼 정열을 쏟는 것뿐이야." 게으른 나에게, 스스로에게 후회 없는 순간들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반응형

'테오의 코이카 > 아디오스, 니카라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본국대피 종료: 3주 뒤에 떠난다  (1) 2018.07.31
5월 15일. 수도 대피  (2) 2018.05.16
5월 14일  (2) 2018.05.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