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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방랑기

삐리리 불어봐 #2. 피리를 배우러 갔다

by 테오∞ 2023. 2. 25.

  2월 두 번째 주 모일 저녁. 첫 피리 수업을 갔다. 공식적으로 본인은 지금 방학 중이지만 2월에 급 잡힌 본가 근처 센터의 수업이 있다. 월수금 12회기짜리다. 끝나는 시간은 대략 5시 반, 난리가 난 교실 뒷정리를 하고 나면 6시쯤. 중고 책방에 가서 수업용 그림책을 고르다 보니 어느새 6시 반이다. 종종 걸어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달 받은 주소를 찍고 연습실로 향했다. 성북천을 꽤 왔다 갔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작고 낡았지만 그래서 귀여운 공간. 본인이야 선생님이 대신 해 주었지만 여느 공간처럼 스페이스 클라우드에서 예약할 수 있더라.   

연습실 들어가는 문
오...! 깔끔한 현대식 공간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먼저 도착해서 구경하면서 기다리니 선생님이 곧 도착했다. 생각보다 젊으셨다. 피리의 구조와 종류(향피리 당피리 등등)설명을 먼저 들었다. 그리고 클라리넷처럼 서(리드)를 불리는 사이에 피리를 왜 배우고 싶은지, 불고 싶은 곡이 있는지, 기존에 악기 연주 경험이 있는지, 오선보를 읽을 수 있는지 등을 묻고 답했다. 

  그러는 사이에 서가 다 불어서 불어 보았다. 조언: 입술 양 끝에 힘을 주고, 이로 서를 물지 않고 입술 사이에. 가능한 한 서의 끝부분을 물어서. 처음 숨에 악센트를 주고 강하게. 몇 번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곧 뿡뿡 소리가 났다. 선생님은 일단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관악기가 대개 그렇듯 소리 내기에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본인의 경우 시간을 번 셈이라고 했다.

  소리를 냈으니 그 다음으로는 서와 관대를 연결하는 법을 배웠다. 리드의 꼬인 철사 부분이 관대 잡았을 때 왼쪽으로 가게 돌려 끼웠는데, 방향이 삐뚤어졌을 경우 아예 서를 뺐다가 다시 끼워야 한다고 했다. 몇 번 고쳐 끼우고 잡아 보았다. 잡는 방법이 새로웠다. 위쪽 구멍은 왼손 손가락 끝으로 막을 수 있지만, 관대 아랫부분을 잡는 오른손으로는 신체 구조상 그렇게 막기가 불편하니 배? 마디?로 막아야 했다.

  마음에 들게 끼운 다음에는 음계대로 낮은 음부터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단소 배울 때 들었던 중임무황태 말고, 나중에 오선보 볼 때 편한 서양식 음계로 지칭했다. 음역은 낮은 시 플랫에서 높은 파까지. 흥미로운 것은 구멍에서 손을 다 떼었을 때 나오는 높은음이 네 개라는 것. 불어보니 자꾸 솔이나 높은 시 b에서 음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음계를 몇 번 연습하고 바로 아리랑을 불었다. 선생님 한 마디, 본인 한 마디. 선생님 두 마디, 본인 두 마디. 같은 음이 있을 때 리코더처럼 혀로 텅잉하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빨리 두드리는 것이 새로웠다. 갈수록 숨이 딸려서 이마에 핏대가 서고, 얼굴이 시뻘게지는 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너무나 평온한 얼굴이었다. 크으. 넘나 멋있는 것. 고수는 역시 힘을 뺄 수 있는 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나중에는 턱관절(선생님 표현으로는 아구)가 아팠는데, 부는 힘이 아직 부족한데 소리를 내려고 그 부분에 과하게 힘을 주어서라고 한다. 뱃심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수업인데 온라인 과외가 있어 좀 일찍 끝냈다. 선생님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특활에서 이렇게 불면 전공하라고 말할 거라고 본인을 마구 칭찬해 주었다. 당연히 초장에 나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멘트라는 걸 알면서도 어깨가 으쓱했다. 고생한 네 아구를 생각하고 겸손해져라 인간아. 여튼 칭찬받아서 좋았음 헤헤헤헤. 악기 파우치가 아직 없어 돌아오는 길에는 손에 관대를 달랑달랑 들고 지하철을 탔다. 

* 첫날 숙제: 한 음 한 음 길게 불면서 스케일 연습. 아리랑 연습

** 다음 시간 준비물: 악기 파우치(관대 들어가는 거 아무거나), 서 불릴 때 쓸 수 있는 작은 컵(뚜껑 있는 걸로)

다이소에서 4개에 천 원인가 하는 이 친구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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