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두라스 복무규정은 개빡빡하다. 이해는 한다. 여기는 온두라스니까. 하지만 설혹 복무 규정이 각 주체들의 편의주의에 절어 널널했을지라도 결국 본인의 삶은 '학교-집-가끔 카페(당분 섭취용)'∞였을 것이다. 본인의 히키코모리스러움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정작 반복되는 일상을 가장 지겨워하는 것도 본인인지라, 가끔 이렇게 공식적으로 외출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무척 설레는 것이다.
캄디에 계시던 동기 선생님은 수도에서 편도 9시간 떨어진 임지에서 지내셨다고 한다. 그런분들이 들으면 애걔, 하시겄지만 일단 현재 온두라스에서는 우리 동네가 수도에서 제일 멀리 떨어져 있다. 그 다음이 수도에서 우리 동네 오는 길에 지나치는 인티부카(Intinucá)시와 라 에스페란사(La esperanza)시다. 아동권리신장 캠페인 협력활동에 참여하게 되어 지난 목~일요일 동안 지내다 왔다.
온두라스에서 드물게 한국의 봄~가을 날씨를 자랑하는 이 두 동네는 중심가로 보면 그냥 한 동네로 쳐도 될만치 서로 붙어있는다. 각 시청이 서로 네 블럭 정도 두고 떨어져 있으니 뭐. 거기에 재미있게도 두 도시가 속한 주의 이름은 인티부카인데 주도는 에스페란사란다. 여튼 이 창원시에는 현재 총 다섯분의 선생님들이 살고 계신다(+6월 말 임지 파견될 두 분 더해질 예정). 가히 코리아 타운이라 할만하다. 아니 이번에 가서 주워들은 선생님들의 바지런하고 축복받은 식생활을 듣고 있자면 볼드체로 써야할 것 같다. 코리아 타운, 최소한 코이카 타운. 한국 슈퍼가 뭐야 중국 슈퍼조차 찾기 힘든 지역에서 살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코이카 단원들이 농부 혹은 요리사 혹은 그 둘의 혼종(로빈슨 크루소, 정확하게는 그 빵 만들어 먹는 대목 같은 삶... 낭만적으로 말하면 타샤 튜더의 삶....)으로 진화하기는 하는데 본인 기준으로는 게장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음 여기가 끝판왕이구나, 했음. 감사하게도 선생님들이 타지 사람들을 위해 집을 내어 주셔서 오랜만에 전기장판에서 기절했다x3일
본 행사는 금, 토요일에 진행되었다. 목요일에 가서는 마무리 작업을 도우며 행사 진행과 관련해 대표 선생님들의 브리핑을 들었다. 자세한 부스 구성 및 진행은 M선생님이 행사후 만든 영상을 통해 보십쇼. 여튼 각 부스는 주제와 연관된 활동을 체험한 뒤 짧은 강의를 들으며 주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식으로 구성되어있는데, 나는 원래 '참여의 권리'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가서 설명을 듣고 보니 굳이 내가 없어도 현지 자봉팀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른 손이 좀 필요해 보이는 쑤쌤의 생존권 활동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옮겨갔다. 돌이켜보면 잘한 선택이었던 듯. 여튼 협활 바막도 선물받고 반나절의 일과를 마치고 저녁으로는 피자를 먹었다 코와붕가!
여기와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한 자리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정말 웃기다. 그래서 좋다. 급수 펌프를 켜고 끄느라 오지게 바쁜척 하며 왔다갔다 하면서, 와글거리고 꺅꺅거리는 목소리들에 즐거워했다가, 또 고작 십 몇 년 정도의 시간 사이사이에 켜켜이 쌓여있는 그 모오든 격차를 보며, 간혹 고스란히 드러나보이는-눈앞에 들이 밀어지는 궁핍함에 선을 그으며 껄끄러움과 귀찮음을,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마태복음 5장을 46절부터 곱씹으며, 심심할때는 그 성별을 씹어가며, 잘 먹고 잘 마시고 (평소에 비해 상대적으로)많이 걷고 많이 웃었다. 나들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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