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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코이카 봉사단 3차 신체검사 후기

by 테오∞ 2017. 6. 7.

  2차 면접 전형 후 약 5일 뒤에 합격자(=3차 신체검사 대상자)가 발표되었다. 14시 정각에 홈페이지에 공지 되었고, 이후 같은 내용의 소식을 메일로 다시 알려 주었다. 해당자는 4~5일 내로 각 지역 내 지정된 검진기관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1차 서류 전형시 기재했던 자격증과 학력, 경력 사항 등의 증명서와 기타 서류(신원조회 동의서, 보호자(부모 혹은 배우자) 동의서 등을 등기로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합격을 확인하고 물론 기뻤다. 당연하지. 하지만 한 편으로 걱정되기도 했다. 면접 합격자로 최종합격자의 3배수를 뽑는다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고, 혹시라도 신체검사에서 건강 상의 문제가 발견 되지는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책상물림 생활(+게으름)과 다년간의 폭/거식으로 약한 빈혈과 기립성 저혈압과 경도 비만이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내 몸 상태야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왜 평소에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땅을 쳤다. 이게 구몬 선생님이 오기 전에 왜 구몬을 미리미리 풀지 않았을까, 개학하기 전에 왜 방학일기를 미리미리 쓰지 않았을까, 시험 하루 전에 왜 미리미리 조금씩 공부해놓지 않았을까 했던 후회와 똑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이들은 알 것이다. 하여간 시간을 돌릴 수야 없는 일이고, 남은 시간 동안이나마 잘 먹고 잘 쉬려고 신경을 썼다. 물론 딱히 유의미한 효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하던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었으니 정신 건강에야 좋았으리라 믿는다. 온라인 이곳저곳에서 빈혈에 좋은 음식 뭐 그런 것을 검색해서 열심히 먹었다. 아, 그러면서 괄약근에 힘을 주고 혈압을 재면 평소보다 혈압이 조금 높게 측정 된다는 팁도 얻었다. 인터넷에는 정말 별 정보가 다 있다.


  혜진의 도움으로 서류들을 제출하고(비록 겉봉에 지원분야를 쓰고 보내는 걸 잊었지만ㅠㅠ 전화해서 물어보니 직원 분이 괜찮다고는 했는데 계속 마음에 걸렸음) 검진 기간 첫 날인 토요일에 바로 서울 지역 검진기관인 KMI 강남건강진단센터로 갔다. 검진이 아침 7시 부터라고 해서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뇽이 차로 센터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이 나이 되도록 엄빠의 도움을 받자니 조금 쑥쓰럽긴 했지만 고마웠다. 엄빠가 늘 바라는 대로 평소에 잘 해야 겠다 마음 먹었다(물론 이 마음은 주기적으로 먹어야 한다... 퍽하면 리셋되니까). 욱해서 왁왁거리지 않고 비속어 사용 좀 줄이고 툴툴거리지 않고 이상한 섹드립치지 않고 아침에 깨우면 재깍재깍 일어나고 일어난 다음 저혈압 핑계로 짜증내지 않고 뭐 그런... 쓰다보니 다시 엄빠에 대한 고마움이 물씬 솟는다.


  아무튼 그렇게 첫 타자로 들어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코이카 신체검사 대상자들 말고도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무척, 매우, 엄청 많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침 7시 정각에라도 도착해서 다행이었다. 조금 더 늦었으면 검사 시간이 더 길어질 뻔했다. 그래도 이렇게 본격적인 검진을 받는 건 처음이었던 데다가,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어서 기다리는 것도 재미있었다.



  7층으로 가서 코이카 신체검사를 하러 왔다고 하고 "코이카 해외봉사단 문진표"라는 것을 받았다. 먼저 온 사람들이 많아서 문진표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난 다음에도 꽤 오래 대기하다 신분증을 확인하고 가운을 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다시 멀뚱 멀뚱 앉아 있다가 진행 순서와 복부초음파 및 소변 검사 등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정해진 순서보다도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임신 가능 여부?서에도 확인 서명을 하고 막간을 이용해 색약검사를 빠르게 진행했다. 그 뒤 본격적으로 7층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하면서 검진을 받았다. 먼저 흉부사진(앞, 뒤, 측면)을 촬영한 뒤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고 혈압을 쟀다. 저혈압일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정상 수치가 나와서 안심했다. 그 후 또 다시 대기하다가 심전도 검사를 했다. 심전도 검사는 처음이었는데, 한 쪽 가슴을 훌렁까고 진행해서 조금 당황했다. 뭔가 지지직하면서 긴 결과지가 나왔는데, 결과를 대강이라도 지금 알 수 있냐고 물어보니 정상이라고 했다. 


  그리고나서 복부초음파 검사를 했다. 자궁 초음파 검사도 같이 해야 했는데, 검사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방광이 어느 정도 차 있어야 자궁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코이카 공지에서는 빠른 진행을 위해 어지간하면 아침에 소변을 보지 말고 검진받으러 가라고 나와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어나자 마자 방광을 비워냈던 관계로 복부초음파 검사 후 대기 하면서 물을 마셨다(상수시 사건 이후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기름 채우기와 화장실 가기는 할 수 있을 때 미리미리 라는 말은 매우 옳은 것이다). 요의가 있으면 바로 자궁초음파 검사를 하게 해준다고 했다. 권고대로 물을 엄청 마시고 계속 왔다 갔다 걸으며 대기하면서 청력과 시력검사를 했다. 소변검사통도 받았다. 자궁초음파 뒤에 바로 쓰라고. 아, 친절한 사람들.


  아무튼 그렇게 계속 대기 하다가 피도 (많이)뽑고 5층으로 구강 검진을 받으러 내려갔다. 평소에 가끔 이가 시릴 때가 있어 물어봤는데, 물리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간혹 이가 시리다고 한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스케일링을 강권한다는 후기를 어디선가 봤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구강 검진 후 다시 7층으로 올라가서 대기했다. 오래... 직원 분들이 물을 많이 마시라고 계속 얘기해주었다. 요의'님'을 기다리는 사이에 문진을 헀다. 처음 문진표를 작성 할 때 보니 에 최근 음주 경험에 대해 쓰라는 항목이 있어서 동동주 한 잔(동동 모임에서)이라고 썼는데, 의사 선생님이 웃으셨다. 동동주 한 잔으로 누군가에게 큰 웃음을 줄 수 있어서 기뻤다. 하여간 그리고 다시 대기 대기 대기를 타다가 드디어 그 분이 오심을 느꼈다. 자궁 초음파 검사에서는 근종이 하나 있다고해서 순간 쫄았다가, 그래도 크기가 별로 크지 않아 큰 문제는 없다는 말에 곧 안심했다. 다만 추적 검사를 꾸준히 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득 찬 방광을 다시 비워내 소변검사통을 채우고 길고 긴 신체검사를 마쳤다.  

  신체검사를 하면서 대기시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체검사 뒤에도 국내교육 대상자 최종 발표까지 또다시, 이번에는 한 달도 넘는 시간을 버텨야 했다. 재검 대상자(참고로 재검부터는 검사비 본인 부담) 외의 지원자들에게는 최종 발표일까지 어떤 연락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재검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어도, 즉 몸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100% 최종 합격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한 달 뒤 내 거취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불확실함과 함께 산다는 건 엄청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애써 다른 일, 예를 들면 국토종주 같은 일에 집중해보려고 노력하는(=발버둥 치는) 한편 틈나는 대로 거의 매일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혹시 다른 소식이 없나 강박적으로 살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5월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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