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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코이카 봉사단 국내교육 대상자 발표

by 테오∞ 2017. 6. 8.
  그런 소문이 있다. 국내교육 대상자 발표일, 최종 발표가 나는 14시 전에 미리 합격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소문이다. 국내교육 대상자에게만 접근 권한이 주어지는 홈페이지 영어이력서 작성 페이지에 접속이 가능하면 합격이라는 이야기다. 귀가 얇은 나는 그 말대로 발표일 오전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영어이력서 작성 링크를 클릭해 보았다. 대상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만 뜰 뿐이었다. 떨어졌나보다 하는 생각과 그냥 소문일 거야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희한하게도, 떨어졌나보다하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빨리 논문쓰고 졸업이나 하라는 계시인가 싶었다. 그래도 일단 공식 발표까지는 확인해 보자고 생각하며 티비를 BGM 삼아 틀어 놓고 폰을 계속 쥐고 있었다. 빅 히어로를 힐끔힐끔 보면서 산만하게 몇 분 간격으로 코이카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다보니 어느새.

  14시. 숨을 크게 내뱉으면서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실눈을 뜨고(꿩 같은 짓이긴 한데, 어떤 결과든 당장 들이밀어지는 걸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합격자 발표 링크를 클릭했다. 축하드립니다, 라는 볼드처리된 글자가 보였다. 숨을 들이 쉬고 잠깐 멈춘 채로 화면을 움직여 배정국가를 확인했다. 니카라과. 


  멈췄던 숨이 탁 터지면서 속에서 무슨 덩어리 같은 게 솟구치는 기분이들었다. 느억인지 뜨억인지 따흐인지 무튼 그 엇비슷한 괴성을 지르며 사방을 뛰었다녔다. 엄빠방에 들어가 침대에서 뒹굴고 매트리스에 주먹질을 해댔다. 바로 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 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흥분한 나를 진정시키고 축하해주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집에 와서 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니카라과는 내가 1지망으로 지원한 곳이었다. 산디니스타 혁명군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주워 들었던게 몇 살때 쯤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무튼 그 이후 니카라과는 쭉 내게 흥미로운 나라로 남아 있었다. 니카라과에 간다. 나는 온 몸을 흔들어대면서 핸드폰 메모장에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의 마음/ 잊지 말자". 물론 동시에 내 이성과 비관은 나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파견국이 바뀔 수도 있어 얘야. 흔하지는 않지만 아예 없었던 일도 아니야(이런 경우를 어떤 블로그에서 본 적 있다). 그러니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긴장해라 등등.

  좀 차분해진 상태에서 국내교육 참가 신청을 하고, 국내교육 대상자 안내문을 읽으면서 앞으로 해야할 일의 목록들을 작성했다. 일단 공식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국내교육 수준별 분반을 위한 영어(전화)인터뷰, 파견기관에 보낼 영문이력서 작성, 관용 여권 발급을 위한 기존 여권 보관(혹은 폐기)였다. 개인적으로 해야할 일로는 가족들과 시간 보내기, 유언장 갱신하기, 몇 안 되는 지인 그룹과 인사하기, 아르바이트 마무리 (잘)하기, 니카라과 관련 정보 모으고 읽기, 방 정리하기, 현지에서 사용할 교재와 교구 목록 써 보기, 한국 홍보물과 기념품 모으기, 교수님들께 메일 보내기, 치과 진료, 이비인후과 가기, 머리 자르기, 혜진을 위한 리모콘 사용 설명서 작성, 각종 물품 구입 등을 적어 넣었다. 국내교육 입소까지 약 3주 간의 시간 동안 깨야 할 퀘스트 목록을 보니 왜인지 모르게 뿌듯했다.

  당장 다음 날 구청에 가서 여권 보관을 신청하려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여권이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건 3월이었다. 처음 코이카에 지원할 때 영문 이름 표기를(항상 띄어쓰기를 했는지 안 했는지 헷갈린다)확인 하려고 배낭에서 꺼냈던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그 다음에 어디다 두었는지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방을 몇 번 뒤집었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코이카 안내문에 분실했을 경우 분실신고를 하라고 나와 있어서 구청에 가서 신고했다. 집에서 잃어버렸다는 얘기를 하자 창구 직원이 웃었다. 재발급 받겠냐고 했는데 사정 설명을 하고 분실 신고만 했다. 분실 신고가 잦으면 이후 여권 신청 시 까다롭게 심사하게 되니 앞으로는 여권을 잘 챙겨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이런저런 것들을 조곤조곤 설명해주어서 고마웠는데 뭐 줄게 없어서 (공무원한테 뭐 주면 일단 김영란법 위반이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상냥한 미소와 목소리로 인사하고 나왔다. 

  아, 영어 전화 인터뷰는 합격 발표 1주일 뒤 3일간 진행 되었다. 국가명 가나다 순이었다. 니카라과가 파견국인 나는 첫 번째 날에 전화를 받았다. 오전에 아르바이트 일이 있어 급하게 국박에 갔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전화를 기다렸다. 전화가 오기 5분 전 쯤 문자로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나중에 검색해보니 코리아 헤럴드 학원 번호였다. 상대방 말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후기를 봐서 이어폰까지 새로 샀는 데도 통화음질이 좋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 긴장해서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인터뷰를 진행한 L씨(내가 좋아하는 밴드 보컬과 같은 이름이라 나홀로 친근함을 느낌)는 꼬리질문을 계속 던졌다. 선방하다가 "너는 좋은 역사교사는 어떤 교사라고 생각하니"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너무 당황해 어버버해버렸다. 어영부영 5분 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원생이면서도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나에게 자괴감을 느끼며 땅을 팠다. 국내 교육 영어 분반을 위한 인터뷰니 내 실력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게 오히려 좋은 일일 텐데 영 기분이 구렸다. 이것저것 건드린 것은 많은데 결과적으로는 0개 국어에 가까운 내 외국어 실력에 대한 진한 현타를 갖는 와중에 또 벨이 울렸다. 병태였다. 우는 소리를 했더니 영어로 말하며 공부한 게 아니니 당연한 일이라고 (그리고 읽고 듣는데 문제가 없으면 된 거 아니냐며) 위로해 주었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병태는 좋은 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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