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1/2017
볕이 좋다. 일요일 오후라는 느낌이 물씬 드는 날이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씻고 방도 쓸었다. 구정 격려품을 내일 쯤이면 찾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아서, 그동안 벽장 1층에 놓아두었던 지난 추석 격려품 상자를 벽장 위로 올려버렸다. 사실 좀 눈에 거슬리는 지라 그냥 버려버리고 싶지만, 귀국 시 짐을 부칠 때 요긴하게 쓰인다는 선임 단원 선생님들의 조언을 듣기로 했다. 여튼 아마 조만간은 다시 맞기 힘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타자를 친다. 내일부터 1학기 시작 전까지 36시간 6주 코스를 시작한다. 이번에는 야간과 주말, 이렇게 2개 반만 개설했다. 수강 신청 자격도 지난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로 제한해서 훨씬 오붓한 수업이 될 것 같다.
혜진이와 뇽이 부쳐 준 택배가 지금 마나과에 있다. 니카라과행 우체국 EMS가 정지 상태라, EMS 프리미엄으로 부쳤다고 한다. 유럽을 거쳐 들어온 상자에는 태평소(리드는 빨대 갈면 된다고 했더니 굳이 서를 또 사서 보내주는 혜진...)와 작년 가을 한창 핫했던 다이소 전통문화 컨셉 상품들, 조각보 가방 같은 이런 저런 한국 기념품, 그리고 내 옷!!(생활한복과 수영복!!! 꺄)이 들어 있다. 아직 내 눈으로 확인을 못 했지만 아마도. 슈뢰딩거의 택배... 여튼 선물용 팩도 잔뜩 샀는데, 에탄올이 들어있어서 배송이 안 된다고 빠꾸 당했다고 한다. 몇 키로는 줄었을 듯. 무게를 줄이려고 그동안 질렀던 책은 뇽이 스캔방에서 스캔떠서 보내주었다. 마나과에 가서 찾아야 할 텐데 주말 수업이 시작되면 이동이 여의치 않은지라 사무소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문의를 드렸다. 과장님이 감사하게도 바로 연락을 주셨는데, 대충 다음~다다음 주 쯤이면 해결될 듯. 수업 시간 게임 상품이나 지난 수업 우수학생 선물 등등은 일단 이번 격려품 박스로 버텨볼 수 있을 것 같다. 타이밍 끝내주누만!
여기까지 치고 점심을 먹었다. 난 맨날 창파이나chanfaina랑 인디오 비에호indio viejo가 헷갈린다. 여튼 오늘의 점심은 인디오 비에호에 큼지막한 플라타노 세 조각, 밥, 그리고 또르띠야+집에서 만든 오렌지파인애플 주스. 탄수화물 폭발이지만 맛있었다. 참고로 오늘 아침은 내 취향대로 마늘을 잔뜩 넣고 만든 볶음밥이었음. 음.. 탄수화물을 좀 줄여야 할텐데 집밥을 먹으니 어지간하면 조절하기 힘드네. 운동을 더 하긴 귀찮은데. 춤 수업은 재밌지만 운동이 될 만큼 많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화요일은 바차타 목요일은 살사. 의외로 바차타가 텐션이 좀 더 강하게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그나저나 갈 수록 수강생이 늘어나고 있음. 유일한 동양인으로 뻔뻔한 얼굴을 하고 껌을 짝짝 씹으면서 스텝을 밟는다. 재미지다! 최근 삶의 활력소. 하숙집 사람들도 내가 춤바람 난 걸 다들 알고 있어서ㅋㅋㅋㅋ 저녁에 나간다 싶으면 춤추러 가냐고 다들 묻는다.
지난 목요일에는 5시 쯤 퇴근하려고 했는데 여느 때처럼 5시 30분에 나왔다. 코워커에게 급하게 메일을 보내느라. 영사님이 한국어단원 단톡방을 파서 2월 중순까지 모집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문화강좌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셨기 때문이다 꺄! 신청은 2월 중순까지지만 프로그램은 7월중순~8월에 진행 된다고 한다. 우리 학생들은 지금 당장 지원하기엔 많이(아주 많이... 이제 24시간 수업들은 학생들인데 뭐) 부족하지만, 일단 지원하게 하고 7월까지 빡세게 연습시킬까 싶기도 하고... 여튼 되든 안 되든단에 학생들에게 좀 더 동기부여가 많이 될 것 같다. 희희. 그러고보니 본캠에서 충북대랑 뭔가 교류를 또 하는 것 같던데. 대사님 모교라 컨택이 잘 되나 보다. 부럽다 본캠!
그러고보니 최근에 부러운 게 많다. 깔끔하고 장비며 교구가 갖춰진 좋은 환경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부럽고, 친화력이 좋아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는 선생님이 부럽고, 아이들(어른이들말고)과 함께하는 선생님들이 부럽고, 예쁜(이국적인?) 지역에 사는 선생님들이 부럽고, 강이나 호수나 바다를 끼고 사는 선생님들이 부럽고, 마음껏 하고픈 요리를 하는 요리왕(엄청남. 타샤 투더 저리가라임. 가래떡 만들고 식혜 제조하시고 끝내준다.)선생님들의 부엌이 부럽고, 딱 수업시간에만 기관에 간다는 선생님도 부럽다. 내 중심이 확실하게 서 있지 않으니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거지. 정신차립시다 본인아.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없더라도 나를 바꿀 수는 있다. 가하는 세헤월 그흐 누후가 자합을 수후 이힜나효오! 항상 지나고 나서 그때 이렇게 할 걸, 저렇게 할 걸, 후회하기를 반복했으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먼저 다가가는 사람이 되자. 힘을 빼고 유연해지자. 개짜증나는 사람이 있어도 명심합시다 이너피스. 레밍처럼 덩달아 뛰지 말고 천천히, 내 페이스 대로. 나만이 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을 그리자.
아, 하숙집 막내인 E는 오늘 에스텔리 캠 입학시험을 쳤다. 아저씨는 어제는 시험지 배송, 오늘은 답안지 배송으로 바쁘다. 다음 주 수요일에는 우난 레온의 입학시험이라고 한다. 학교를 살펴보러 레온에 다녀왔다는 에밀리에게 도시가 마음에 들었냐고 물으니 무척, 이란다. 번화한 곳이기도 하고,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집에서 독립하고 싶은 생각도 있을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가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거리를 두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혜진이 서운해 하겠지만, 근데 너도 그렇지 않니? 뇽이 좋아도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 있잖음??? 하여간 그 것도, 그 흔한 자취도 기숙생활도 해본 적 없는 내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오리온자리가 누워있는 여기에 와 있는 이유 중의 하나임. 아 근데 솔까 집이 제일 편한건 사실이제. 아무리 미세먼지가 폭발해도. 근데 나는 오지게 게으른 인간이라 나를 좀 반강제적으로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 걍 히키로 세상 마감할 게 뻔해서. 편한 거 좋지. 근데 움직이지 않으면 고이고 고이면 썩는 게 사실이니까. 여튼 내일부터 다시 재시동이다.
+효영 언니 결혼 축하드려여! 흑흑 못 가서 넘나 아쉬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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