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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국내교육 36일 차

by 테오∞ 2017. 7. 24.

  버스 안에서 타자를 친다. 인터넷은 당연히 되지 않아 메모장에 작성하고 있다. 다른 직종 선생님들은 다른 버스에 타고, 내가 탄 버스에는 한국어교육 선생님들 30명만 타고 있다. 그동안 지쳤는지 대부분 기절 중이다. 나도 그냥 자고 싶기는 한데, 아무래도 지금 자면 이따 밤에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한다.  

  오늘 아침도 과자로 때우고 수업을 들으러갔다. 직무교육 중 가장 많이 뵈었던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까지 맡아주셨다. 다른 선생님들의 수업도 좋았지만 이 선생님의 수업이 특히 좋았던 건 말하기 중심의 수업에 관해 흥미롭거나 생각해 볼 부분들에 대해 많은 자극을 주셔서인 듯 하다. 무척 재밌게 들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 어제 사온 책에 사인도 받고 사후 테스트(J선생님의 개그에 따르자면 死後)를 마지막으로 모든 교육일정을 마쳤다. 

  점심 먹으러 가기도 번거로워서 숙소로 돌아와서 남은 과자를 까 먹고 수료식에 갔다. 직무교육을 무사히 마친 동기 선생님들, 그리고 짧은 직무교육 기간 여러모로 고생하신 신한대 선생님들에게 모두 박수를 보냈다. 수료증에 정성스럽게 포장한 달다구리와 비타민음료까지 받아들고 상쾌한 마음으로 영월행 버스에 올랐다.

  여기까지 썼는데 버스가 갓길에 정차했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앞자리 시니어선생님들 몇 분이 무슨 일인가 운전석을 기웃거리신다. 뭔일일까? 타이어가 터졌나? 

  + 버스는 무사히 출발했다. 나는 자지 않겠다고한 말이 무색하게 기절해서 주천면 즈음해서 일어났다. 잠깐 정차했기 때문인지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버스가 먼저 도착해있었다. 주차장에 영월교육원 선생님들이 마중 나와 계셨다. 이 푹푹한 날씨에. D쌤의 말처럼 집에 온 것 같았다. 산등성이에 물안개가 그득하고 서로 다른 모양의 숙소들 사이로 잠자리들이 낮게 나는 영월의 풍경. 벌레 소리와 젖은 풀냄새. 걸을 때마다 발목을 스치는 잎사귀들 틈에 어느새 쑥쑥 자라나 있는 버섯들, 목숨을 걸고 길을 오가는 달팽이와 개구리들. 달라붙는 공기. 이런 것들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복작복작한 방으로 돌아와 짐 정리를 했다. 희한하게도 주인을 알 수 없는 속옷들이 자꾸 출몰했다. 다들 자기 것은 아니라고 해 소거법으로 내가 챙기기는 했는데 이게 내 속옷이 맞는지 아닌지 영 긴가민가했다. 이렇게 다들 짐정리를 하는 중에 M선생님이 M쌤이 언제 출국하는지 물었다. 쓰다보니까 우리방 선생님들은 나만 빼고 모두 M선생님들이네. 아무튼 우리중에서는 M쌤이 가장 먼저 출국한다. 그 와중에 M쌤이 무의식 중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는데 멜로디가 작별이어서 다들 웃었다. 출국일은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국내교육으로 보면 만으로 12일 정도 밖에 남지 않은 거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12일 사이에 마지막 예방 접종을 받고, 강의들을 듣고, 현지어 공부/최종평가/경연대회를 치르고, 인문학독서토론회 책을 읽고 토론회에 참석하고, 지역사회봉사로 요양원에 한 번 더 다녀오고, 각종 소모임에 참석한다. 후회 없는 날들이 되도록 하루하루 충분히, 양껏 살아내고 싶다. 일단 지금은 책을 읽자. 읽어도 페이지가 줄지 않는 마법의 책이다. 최소한 내일 중에는 마법이 풀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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