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과자를 한 아름 사고, 영양 성분 분석 실습(?)을 하셨다는 간호 선생님들이 주신 과자까지 얻어 들고 방에 올라와 행복해 하고 있다. 다음 수업이 14시 30분에 시작해서 매우 여유롭다. 시간 나는 김에 밀린 타자를 치려고 노트북을 열었다. 글제목을 쓰려고 보니 오늘이 벌써 30일차다. 우리 기수의 국내교육이 총 47일이니, 20일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교육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아직은 잘 실감 나지 않는다.
하여간 지금 나는 영월이 아니라 의정부에 있다. 신한대학교에서 다음 주 월요일까지 직종별 직무교육을 받고 영월 교육원으로 다시 이동하게 된다. 네 명이서 복작복작했던 영월 숙소와 달리 2인 1실의 넓은 방이다. 태국으로 가는 U선생님과 룸메가 되었다. 우리 방은 3인실인데 2명만 써서 훨씬 쾌적하다. TV도 있고, 캠퍼스 안에 있는 우체국에 은행, 편의점과 카페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영월에 비하면 대단히 문명화 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월이 조금 그립다. 고작 몇 주 머물렀을 뿐인데 그 곳에 굉장히 오래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다. 나름대로 밀도 높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까? 하루에도 많은 일들이 지나가기 때문에 정말 짧게라도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많은 것들이 쉽게 잊혀질 것 같다.
28일 차. 외박 이틀째. 혜진이 표 아침을 먹고 1부 예배 드림. 차 안에서의 대화 소재1 퀴퍼. 예배 후 병태와 교보문고로 감. 내 책과 병태 책(+선임에게 부탁받은 모 아이돌 앨범)을 고심고심해서 삼. 내용이 별로다 싶은 건 일단 목차만 찍어 놓음. 책 값에 손이 덜덜. 단어장도 몇 개씩 삼. 병태랑 같이 여의도로 가서 짤막한 한국어 인사말 영상 찍고 카페 갔다가 헤어짐. 집에 와서 못 본 비정상회담 보다보니 엄빠 옴. 치킨 먹고 칙촉 먹고 하여간 뭔가를 계속 먹고 티비보면서 뒹굴거림. 그러다 거실에서 기절.
29일 차. 신한대로 복귀하는 날. 어제 바닥에서 자서 그런지 목이 뻐근함. 엄빠 출근 후 햇반 데워서 김이랑 후라이랑 김치로 대강 아침 때우고 출발. 매우 더움. 택시 탈까 하다가 늦은 것도 아니니 그냥 버스타고 가기로 함. 의정부라 그나마 다행이지. 숙소 키 받고 짐 풀고 생활안내, 점심식사, 교육안내 후 수업 들음. 저녁 먹고 또 수업들음(한국어교육만). 저녁수업은 이 날밖에 없어서 다행. 익숙하지 않은 요상한 의자에 계속 앉아있으려니 좀 힘들긴했는데 유용하고 도움 되는 수업이었음. 10시 점호 후 에스빠뇰을 좀 깔짝거리다가 12시 쯤 잠.
30일 차. 화요일. 이어폰 끼고 잤는데 뒤척거리다가 플러그가 빠진 듯. 알람을 못 듣고 계속 자다가 룸메 선생님이 깨워주어서 일어남. 대충 옷 입고 1층 체력 단력실에 감. 운동화를 안 챙겨와서 런닝은 못 하고 이런 저런 스트레칭이랑 근력 조금하고 올라옴. 짐볼 있던데 내일은 짐볼운동 좀 검색해가야겠음. 하여간 땀이 충분히 안 나서 찝찝. 불완전 연소 된 기분. 식당에 안 가고 어제 M쌤이 준 고구마랑 밤으로 아침 먹음. 그래서 그런지 오전 수업 막판에 몹시 배가 보팠음. 아침에는 보슬비가 오더니 점심 때 쯤은 축축쨍쨍. 요리 직종 선생님이 실습하셨다는 머핀(바닥에 블루베리가 약간 깔림)을 점심시간에 모두에게 돌림. 행복. 푸짐하게 점심 먹고 과자 사고 민트초코 쭉쭉 빨면서 방에 올라옴. 양심 상 오늘 저녁은 풀만 먹어야 겠음. 약 40분 뒤 오후 수업 시작. 왼쪽 목, 정확하게는 왼쪽 귀아래로 뻗은 부분이 계속 뻐근함.
+ 내 양심은 엄청 동글동글한가 보다. 풀만 먹기는 개풀. 하여간 저녁을 먹고 멤라이즈 어플로 에스파뇰 단어를 좀 보다가 기절했다. 룸메 선생님이 9시 50분 쯤 깨워주어 대강당 점호에 늦지 않았다. 점호 후 S선생님(과 프로페소라스 데 무지카스) 방에서 다큐 영화 "엘 시스테마(2008)"를 보았다. 워낙 많이 이야기 되는사례라 간간이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영화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영상 속에 비춰지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호기심, 경이, 놀라움, 자부심, 희망, 확신, 즐거움, 몰입. 예술(혹은 예술교육, 혹은 교육)이 가진,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힘. '다른' 것들을 보게 해주는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올해 문화예술교육주간 콘퍼런스에서 본 콜롬비아 몸의 학교 사례가 자연스럽게 연상 되기도 했다. 알바로 레스트레포는 자신의 스피치에서 날개를 달아주는 자-윙 메이커로서의 예술교사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내가 파견되는 한국어 교육이라는 분야에서 나는 어떻게 좋은 '조력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단순한 지식 전달, 언어 교수를 넘어(이건 책이나 구글이 나보다 더 잘할 수 있으니) 플러스 알파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계속 가지고 가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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