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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국내교육 24일 차

by 테오∞ 2017. 7. 12.

  룸메 선생님이 수박을 얻어 오셨다. 같은 나라로 가시는 선생님이 오늘 관외 교육 후 수박 한 통을 사와 숙소에서 수박파티를 열었다는 것이다. 교육원 식당에서도 수박이 두어 번 나오기는 했지만 커다란 수박을 바로 쩍 갈라서 먹는 맛은 또 다를 것이다. 아까 씻으러 가기 귀찮아서 밍기적 댔는데, 밖에서 들리는 개구리며 풀벌레 소리, 방에서 들리는 으석으석 수박을 베어 무는 소리에 그야말로 여름 밤이라는 게 실감났다. 다행히 영월의 아침과 저녁은 아직 서늘하다. 그래도 장마가 슬슬 마무리 되면서 부쩍 더워지기 시작한 듯하다. 

  오늘 낮도 퍽 더웠다. 아까 주천면에서 저녁을 먹고 A쌤을 따라 들어간 나들가게 아주머니 말씀(강원도 사투리로) "덥겠네요. 왜 그렇게 긴 옷을 입었대요?" 그저 웃지요.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기수 모두가 긴팔에 긴바지, 조끼로 완전 무장을 해야 했던 까닭은 오늘이 "재난안전실습"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영월소방서에서 여러가지 체험 교육을 받았다. 아래 다시 쓰겠지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더운 날씨에 비번인데도 우리들의 교육을 위해 종일 애쓰신 소방관 여러분들에게 무척 죄송하고 감사했다. 소방공무원들의 처우 개선이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오전에는 버스가 조금 늦게 출발했다. 소방서에 도착하자마자 허겁지겁 기증식을 했는데, 우리가 앞으로(다들 내일일 거라고 추측 중이지만) 체험할 1달러데이를 통해 아낀 식비로 소화기와 화재경보기(감지기?) 등을 기증하는 시간이었다. 약간 전시행정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기증된 물품들을 주변 마을에 설치해 '화재 없는 마을 만들기'를 한다고 하니 아주 의미없는 일은 아닌 듯하다.

  짧은 기증식을 마치고는 어제 공지 받았던 대로 세 조로 나누어서 돌아가면서 체험을 진행했다. 우리 조는 긴급탈출교육(완강기와 로프 매듭 실습), 화재대응교육(소화기 사용법 익히기와 농연체험), 응급처치교육(심폐소생술과 AED 사용법) 순으로 참여했다. 한 조에서도 다시 두 팀으로 나누어서 서로 바꿔가면서 진행을 했어야 했지만 첫 시간에 출동명령이 떨어져서 교관 수 부족으로 완강기 체험은 오전에 하지 못했다. 

  대신 다양한 매듭법을 배우고 꽤 오래 각자 실습해보았다. 오늘 배운 매듭법은 팔자매듭, 고리매듭, 옭매듭, 피셔맨매듭, 바른매듭, 말뚝매듭, 줄사다리매듭이다. 몸에 배게 잘 익혀두면 무척 유용하고 쓸모있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여간 스카우트 활동을 제대로 했으면 매듭실습시간의 에이스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했다. 일진 놀이 한다고 정신 없었던 우리 보장언니오빠들이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하여간 옆 자리의 R선생님이 헤매는 나에게 끈기 있게 설명을 해주고 시범을 보여 주어서 어찌어찌 진도를 쫓아갈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K선생님이, 중간중간에는 또 C선생님이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고리매듭은 이제 자신있다. 물론 절체절명의 순간에서야 몹시 당황해 매듭법이고 뭐고 기억이 날까 싶지만 틈틈이 연습해두면 조금 낫지 않을까 한다.

  매듭법을 배우고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갔다. 주메뉴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였지만 다른 밑반찬들도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었다. 소방서로 다시 돌아와서는 화재대응교육을 받았다. 나는 먼저 농연체험을 한 다음 소화기 실습을 했다. 방화복은 무척 무거웠다. 헬멧을 쓰고 천장이 낮은 체험장 안을 네 발로 기듯이 움직이자니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무척 불편했다. 그래도 소방관 분들이 앞뒤로 함께 해주셔서 별 문제 없이 체험을 마칠 수 있었다. 소화기 체험이야 뭐 그래도 몇 번 어깨 너머로 본 적이 있어서(터뜨린 적 포함) 수월하게 했다. 땡볕에서 드럼통에 불 붙이기를 반복하는 소방관 분들이 무척 더울 것 같았다. 

  K쌤과 M쌤이 막간을 이용해 나도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해주었다. 우리 앞에 있는 소방차에는 물이 몇 톤이나 들어 가는지 등등. 지난 강릉대화재 때 영월소방서에서도 모두 출동해서 잠도 자지 못하고 진화 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워난 큰 불이어서 잔 불은 신경도 쓰지 못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소화기 실습까지 마친 다음 오전에 하지 못한 완강기 체험을 하러 갔다. 사실 완강기 체험을 하지 못하는 줄로만 알고 아쉽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체험을 한다고 해서 조금 기뻤다. 3층 건물 옥상에서 완강기 줄에 의지해 떨어지는데 걸어올라가는 데 일단 진이 빠졌다. 내려 올 때는 벽만 보게 되니 오히려 괜찮았는데 꼭대기에서 앉아있다가 몸을 돌려 떨어지는 순간이 조금 긴장되긴 했다. 체험 중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해 대기 중이신(역시나 땡볕에서) 소방관 분들의 도움으로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기대하던 CPR교육! 많은 실습인형들이 놓여 있는 시원한 실내 공간에서 진행했다. 근래 교수법 수업(연수?)을 들으셨다는 교관님의 첫 실험체(?)가 되었는데 바깥에서의 실습으로 무척 지친 상태였는데도 여러가지 활동을 하며(교관님 소개 진진가, 자음 맞추기, 쪼그라들어 가위바위보 등) 즐겁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3인 1조가 되어 총 8팀이 수업을 들었는데, 나는 A쌤, K쌤과 같은 조가 되었다. 홍식이(우리조 실습인형)도 힘써주었다. 생각헀던 것보다 힘을 많이 주어 눌러가며 압박을 해야 했다. 실시하는 내 호흡도 같이 가빠졌다. 과연 응급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배운 대로 의식확인->(연락부탁)->호흡확인->CPR->AED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막간을 이용해 하임리히법도 배웠다. K쌤이 기도폐쇄 열연 중인 내 모습을 찍어 주었는데 엄청 웃겼다.  

  모든 체험을 마치고 기수 모두가 모여 (또)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너무 오래(많은 컷을?) 찍고 있으니 옆에 앉았던 시니어 선생님이 계속 투덜거렸다. 마지막에 야외에서 교육 받은 팀들이 다들 엄청 지쳐보이기는 했다. 사실 나도 조금 진이 빠졌다. 졸린 것은 아닌데 강의실에서 내내 강의를 듣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피곤함이었다. 이런 일들 보다 훨씬 강한 강도의 활동을 매일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 하는 소방대원 분들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주천면에서 아마 마지막일 바우처 외식을 했다. 첫 번째 외식 때 갔던 M식당에서 메밀 만둣국을 먹었는다. 다른 선생님들이 돈을 보태 사주신 감자전도 맛있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통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아 숙소에 돌아왔다가 룸메 선생님을 따라 저녁 운동을 갔다. 다들 피곤해서 숙소에 있을 줄 알았는데 본부동 인터넷카페며 국별방에서 현지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선생닙들이 많았다. 많은 자극을 받았다. 내일은 오전 수업을 듣고 점심부터 저녁까지 현지어 시간이다. 금요일에 있다는 현지어 중간평가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개운하게 씻고 타자를 치고 있으니 이제는 잠이 온다(오타가 많아도 이해를 부탁한다). 내일을 위해 일단 오늘은 후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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