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현지어 수업 대신 마나과에 다녀왔다. 도시의 공기는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지만 나는 도시체질은 영 아닌 것 같다. 물론 지금 머물고 있는 그라나다도 니카라과에서는 큰 도시다. 그래도 왠지 마나과 보다는 정이 간다. 하루 종일 갑갑한 단복을 입고 있어서 더 답답한 기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오전에는 대사관과 자이카(JICA)를 방문하고 오후에는 사무소에서 경찰 관계자 분들에게 생활 전반의 안전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점심에는 한식당에서 밥을 먹고 한인마트에서 어떤 물건들을 파는지 슬쩍 둘러보기도 했다.
마나과 가는 길에 도로 근처에 지어진 판잣집들을 여러 채 보았다. 우리는 그나마 벽이 있는 집에서 머무르고 있으니 훨씬 나은 형편이라고 L쌤이 말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도드라진 말들이 달리는 차 바로 옆에서 열심히 풀을 뜯고, 겁없는 닭들이 종종 우리 앞을 쓱 지나가기도 하는 길을 지나 사무소에 도착했다.
오늘 일정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고 막간을 이용해 I쌤에게 핸드폰을 샀다.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쓰던 내 핸드폰에 현지 유심만 꽂아 사용했다. 잃어버리거나 고장나면 큰 일이라 안 그래도 현지폰을 따로 살 생각이었다. 마침 I쌤이 2일 차에 샀던 핸드폰이 필요없다고 해서(수업시간에 필요한 동영상을 만들거나 하는 작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넘겨 받았다. 한국돈으로 5만원 정도. 그 동안 큰 화면에 익숙해져서 자꾸 오타가 나지만 가벼워서 좋다. 다만 언어 설정을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으로 밖에 할 수가 없어 그냥 스페인어로 설정해 놓았다. 공부도 겸사겸사 하고 좋은 것 같다. 별도로 키보드를 다운 받지 않으면 한글도 칠 수가 없어서 일단 한국에 연락할 때는 원래 폰을 사용하고 있다.
대사관에서 이런저런 분들을 만났다. 다들 일정이 있으셔서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그래도 짤막하게 나마 니카라과의 문화나 역사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레온과 그라나다 사이의 경쟁 의식이라던가 화산 문제라던가는 알고 있었는데, 지난 한국전쟁 때 니카라과에서도 물자를 지원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더 알아 보아야겠다.
올해가 한국 대사관 설치 10주년이라 올해를 한니-니한 우정의 해로 선포하고 12월 즈음해서 이런저런 행사들이 있을 계획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국어 수업에도 얼마간 도움이 될 것 같다.
대사관에서 나와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는 자이카 사무소를 방문했다. 으리으리한 사무소였다. 코이카가 2014년 들어온데 비해 자이카는 오랫동안 니카라과에서 활동해왔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태권도 단원을 파견하는 것처럼 자이카에서도 무도 단원을 파견하기도 하고, 야구 지도 단원도 있다는 점, 코이카와는 다르게 40세부터 시니어 단원으로 활동한다는 점 등이었다.
하여간 지금 활동 중인 자이카 봉사단원은 39명. 어쩌면 파견지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자이카 사무소장님과 코디네이터 두 분, 현지 직원 한 분과 인사를 나누었다. 물론 스페인어로. 그래도 특유의 억양이 있어서인지 그들에게도 에스빠뇰은 외국어이기 때문인지 이해하기 더 쉬웠다. 구몬을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일본어로 말할 수 있었겠지만 다 잊어버려서 아쉬웠다. 하여간 떠뜸떠뜸 내 소개를 하고 나니 좀 부끄러웠다. 스페인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일본 아니랄까봐 명함을 세 장이나 받아서 나왔다.
점심은 한인 식당에서 먹었다. 만 원짜리 김밥을 먹으려니 속이 좀 쓰렸다. 그나마 양이 꽤 되고 맛있어서 다행이었다. 마트도 붙어 있어서 구경했다. 원래 '도란스'를 사려고 갔는데 발열 제품이 없는 나는 딱히 필요 없다고 해서 사지 않았다. 한국 식품이며 통조림 반찬이며 이런저런 한국산 가재도구들이 있었다. 다 비싸서 정말 한국 음식 못 먹으면 못 견딜 것 같다하는 순간이 오기 전에는 올 일이 없을 것 같다. 대나무 김발이랑 껌 반 통(L쌤과 같이 사서 반씩 나눔)만 사고 나왔다.
사무소에 돌아가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견장에 많은 별(?)이 있는 경찰 관계자들(과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지켜보려고 온 외교 관계자 1)이 방문했다. 통계적으로 다른 중미 국가들에 비해 니카라과의 치안은 매우 안전한 편이니 걱정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최대한 도와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두 달간 머무는 그라나다 청장님도 왔는데, 우리 하숙집들과 학원 주변을 주의 깊게 순찰하라고 지시했으며 목요일인지 금요일인지에 학원에 방문하겠다고 했다. 여튼 그라나다는 안전한 편이지만 그래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게 요지였다.
돌아오는 길에 사무소 아래에 있는 약국에서 모기기피제를 사려고 했는데 없다고 해서 그냥 나왔다. 계피라도 왕창 사야겠다. 지금 내가 있는 하숙집에서 2년 동안 살았던 선배단원이 지카에 걸렸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좀 불안하다. 흠. 사실 방에는 문이랑 창문에 다 방충망이 있어서 괜찮은데 학원이나 교회, 식당이 문제다. 그렇다고 아예 아무데도 가지 않고 방 안에 박혀 있을 수도 없으니 빨리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하숙집 할머니가 아침에 오늘 저녁으로 물고기 수프가 나온다고 해서 뭘까 했는데 등딱지가 손가락 세 개만한 게 몇 마리와 커다란 흰 살 생선이 들어간 맑은 국(??)이었다. 니카라과에서는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다니 나름 귀한 식재료인 것이다. 할머니의 자부심 넘치는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문제는 나는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예의 상 게딱지를 좀 분해하고(태어나서 내 손으로 처음으로. 너무 징그러웠지만 애써 침착하게 분해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해산물은 생선 구이와 튀김, 참치, 연어, 꽁치 통조림과 김 정도다.) 생선살을 발라 먹었다. 혜진이 알면 편식을 고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좋아할 것 같다. 그래도 기름이 동동 뜬 국물은 무척 맛있었다. 국물 만큼은 싹싹 비웠다. 하숙집 가정부(?) 아줌마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방으로 들어와 기절했다. 숙제를 미리 해 놓아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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