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1.2018
첫 마음을 계속 가지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겨울에 어울리는 호지어 노래를 들으며 타자를 친다. 춥다고 춥다고 노래를 부르며 타자를 치던게 바로 지지난주인 것 같은데 다시 더워졌다. 몹시.
나는 조금 화가 나 있었나? 그럴지도 모른다. 조금 겁에 질려 있었나? 그럴지도 모른다. 평탄한 단원 생활이 어디있겠냐만, 그래도 어지간해야지. 처음. 처음에 나는 니카라과에 가고 싶었다. 전설적인 혁명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보니 엉겁결에 도착한 이곳에 통 정을 붙이지 못하고... 까지 치고 폭죽소리가 들려 급하게 바지를 꿰어 입고 밖으로 나갔다. 불꽃은 어쩌면 저렇게 빛나는지, 어쩌면 저렇게 순식간에 사라지는지, 어쩌면 저렇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지.
오늘의 불꽃놀이는 커피를 위한 것이다. 가난한 온두라스의 자랑인 커피. 커피를 따는 손과 돈을 세는 손은 다르지만 그래도 어쨌든 온두라스는 세계 5위의 커피 수출국이다. 대사관 자료에 따르면 커피 산업은 온두라스 전체 GDP의 5%, 농업분야 GDP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오늘 행사에는 대통령까지 행차했다. 그제 잉여짓을 하면서 페북을 하던 내가 막 운반 중인 거대한 커피잔 사진을 보지 못했다면, 어제 카쌤에게 커피 행사에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의 행사가 온두라스 관광청 등등의 커피 행사인지, 세상에서 제일 거대한 커피잔&가장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커피 시음회 기네스 기록을 깨기 위한 행사인지, 기관 학생들이 대거 동원되는 행사인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텅 빈 학교에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겠지.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아침 일곱 시 반까지 광장으로 출근했고, 9시 시작이라고 공지되었지만 거진 11시가 다 되어 시작한 행사를 위해 허허 웃으며 군중 속에 묻혀 앉아 있었다. 그 와중에 작은 기쁨은 서툰 발음으로 안녕하세요하며 아는 체를 해주는 학생들. 큰 기쁨은 소비와 소비와 소비였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속물적인 인간인지. 불꽃 소리를 듣고 보기 전까지 오늘의 가장 큰 기쁨이 늦은 점심으로 박선생님 댁에서 먹은 쑤쌤의 돼지고기 김치찌개인 나는 얼마나 단순한 인간인지. 옘병. 나는 얼마나 작으냐.
호관과 시험. 현 상태에서 필기 시험을 보는게 찍기 운을 보자는 게 아닌 이상 의미가 없을 것 같아 필기+구술 계획을 버리고 구술만 진행. 최대한 점수를 주고자 과제를 부여하고 미리 설명해 주었는데도 진짜 한 글자도 들여다 보지 않아 나를 힘빠지게 하는 학생들 75% 성실한 학생들 20% 수업 중에 흘려보낸 표현까지 잡아채서 나를 한 방 먹이는 학생 5%. 개인적인 호불호와 상관없이 25%는 내가 뭘하든 알아서 할 거고, 다음 학기 수업에서도 당연히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 75%들의 뇌를 어떻게 자극시켜야 할 것인가. 난제.
'테오의 방랑기 > 하루하루, 온두라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D-253 온두라스 107일차 (1) | 2018.12.06 |
---|---|
D- 271 온두라스 89일차 (1) | 2018.11.18 |
D-303 온두라스 58일 차 (1) | 2018.10.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