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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현지교육 45일차: 피스콥 방문

by 테오∞ 2017. 10. 2.

  말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쏟아 붓던 폭우가 잠잠해졌다. 마따갈파는 시가지가 침수 되어 난리라고 한다. 마나과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벽화를 그리기에는 마땅치 않은 날씨라 오후에 예정 되어있던 학교 방문은 취소 되었다. 내일 하루 동안 벽화를 무사히 완성할 수 있을지 좀 걱정이다.

  하여간 오전 일정 후 각자 점심을 해결하고(나는 그냥 방에서 기절) 과장님과 사무소 직원 A, Aj, I, F쌤과 페인트 가게에 들렀다가 쇼핑센터인 메트로 센트로 안의 문구점으로 가 내일 쓸 페인트며 붓, 아크릴 물감 등을 준비했다. 사실 나야 미술교육 단원 선생님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동안 멀뚱멀뚱 구경만 한 셈이긴 하다. 꽤 다양한 사무용품과 문구류를 갖추고 있어서 이것 저것 둘러 보는 재미가 있었다. 임지 파견 전 필요한 물건을 여기서 구입하면 될 것 같다. 미리 조금씩 구입 희망 목록을 작성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과장님이 간식으로 크레페를 사주셨다. 딸기와 바나나와 누텔라의 하모니는 한 입만 먹어도 당이 올라가는 느낌이었다=맛있었다.


  오늘 오전에는 피스콥 니카라과 본무를 방문했다. 미국평화봉사단, 피스콥은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설립한 단체다. 'Peace cop'이 아니라 Peace Corps. 온통 하늘색으로 칠해진 니카라과 피스콥 사무소의 높은 담벼락에는 Cuerpo de Paz라는 금속 글자가 박혀있었다. 미국 정부기관답게 대단히 까다로운 절차들을 거치고 신분증을 모두 맡긴 다음(Y쌤은 지갑을 두고와서 명함으로 대신함) 쬐끄만 문으로 들어갔다. 솔직한 말로 첫 인상은 좀 재/수없었다. 콧대가 높아도 너무 높다고 느껴졌다. 하여간 2층(!) 회의실로 올라가서 직원들과 몇 명의 봉사단원들을 만났다. 흥미로운 만남이었다. 역사도 깊고, 한국에도 단원을 파견했던 적 있는 단체인만큼 더 흥미로웠다. 게다가 미국사람과 한국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흔한 일은 아닐테니까.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이런 저런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사실 거의 과장님이 질문했다. 여튼 인상적인 콧수염을 가진 사무소장 할아버지는 (한국에 봉사단원으로 파견되었던)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와 같은 시절 피스콥 단원 활동을 했다고 했다. 니카라과에는 지금 백 명이 넘는 피스콥 단원들이 R.A.C.C(북아틀란티코 자치구)를 제외한 각지에서 각자 2년의 기한으로 활동 중이고, 아예 단원들의 적응 훈련을 위한 센터가 마사야와 카라소 두 지역에 있다고 한다. 사무소에 아예 단원들을 위한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활동 단원들이 대부분 홈스테이 가정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특이했다(코이카 단원들은 대개 자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와 비슷하게 니카라과의 기후와 문화적 차이 등을 곤혹스러워했고, 특히 한 흑인 여성 단원은 길거리 성희롱(캣콜링ㅡㅡ)을 큰 불편함 중 하나로 꼽았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사건 때문에 자연적으로 자리 잡은 니카라과의 반미 감정이 봉사단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왜 다른 나라가 아닌 니카라과를 선택했는지 봉사단원들에게 질문하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 상 다음으로 미뤘다. 에스뗄리 시에만 3명의 피스콥 단원이 활동 중(에스뗄리 주로 보면 더 많음)이라고 하니 차차 알게 되겠지. 그러고보니 S선임단원 쌤의 옆 방에 피스콥 단원이 산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빠질 수 없는 단체사진 촬영 후 봉사단원들을 서포트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P의 사무실에서 잠깐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가만히 있어도 느껴지는 쾌활한 P는 니카라과 사람과 결혼해서 아예 정착(?)한 사람이다. 우리가 길거리에서 치노라고 불리는 것 처럼 자기도 그링고라고 불렸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또 웃겼(?)던 것은 거의 6개월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단원들의 우울증 곡선. 한국에서 떠나기 전 혜진에게서 들은 모로코 P선생님의 얘기가 기억나 흥미로웠다.

  피스콥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곳곳에 붙어 있는 무지개 역삼각형 safe zone 스티커, 그리고 남녀 표지판 구분이 없는 화장실이었다. 이런 인식이 일반적인게(적어도 피스콥 안에서는) 좀 부러웠다. 대단히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저녁은 수요일에 산 학원 옆 빵집 빵 남은 것+오렌지+불고기 소스. 근처 쇼핑몰에 있는 가게들에서 배달시켜 먹을까 해서 카운터에서 음식점 책자를 받아왔는데(크레페 배달도 된다는 게 신기함) 막상 그렇게 땡기는 게 없어서 그냥 경제를 살리기로 했다. 느긋한 하루의 마감이다. 그나저나 숙제를 얼른해야 평안한 주말을 보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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