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코이카 봉사단 국내교육 1일 차

테오∞ 2017. 6. 19. 22:36

  영월 교육원에서의 첫 밤이다. 밖에서는 개구리인지 풀벌레인지 모르는 것들이 와글와글 울어댄다. 잠시 뒤면 점호다. 막간을 이용해 혜진과 통화도 하고, 세수도 마치고 내 침대에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정신 없이 지나간 하루였다. 염곡동 교육원에 집결해서 버스를 타고 영월로 이동하게 되기 때문에 출근 인파에 휘말리기 싫어서 학교에 가는 아빠 차를 타고 6시 30분 쯤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그런데 창경궁 근처에서 신분증이 들어있는 카드목걸이를 두고 왔다는 걸 알아챘다! 아빠와 인사하고 서울대 병원에서 집까지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카드를 다시 챙기고, 이번에는 혜진과 함께 다시 택시를 타고 정류장까지 나갔다. 오늘 늦게 출근해도 되는 날인데 나를 챙긴다고 아침에 집을 나서는 혜진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다행이 염곡동 코이카 교육원으로 가는 버스가 바로 와서 늦지 않고 모이는 장소에 출발 10분 전쯤 도착할 수 있었다(그것도 앉아서).

  주차장에 버스 세 대가 서 있었다. 파견국과 이름을 확인 후 버스를 배정 받고 승차했다. 10시 출발 예정이었는데, 많이 딜레이 되어서 거의 22분쯤 되서야 출발했다. 주차장을 돌아 나가는 차창에 소나무 가지가 걸려 끼이익 하는 소리가 났다. 순간 세조와 정 2품송이 생각나 좀 웃겼다. 뭐 이게 왕의 행차는 아니니까. 아무튼 조금 늦춰진 일정에 대해 혜진에게 톡으로 투덜거리니 어쩌다 나도 실수(=지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너그러움이 필요하다고, 입장 바꿔 생각하라고, 폭염특보 속에 얼마나 마음 졸이고 땀 흘리며 오겠냐고, 이럴 때 시원한 물 한 잔 건네주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 주었다. 맞는 말이다. 남의 눈의 티끌을 찾기 보다 내 눈의 들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자(그리고 그걸 인지는 하되 좀 빼려고 노력하자)고 마음 먹고 버스에서 기절했다.

  눈을 뜨니 버스는 원주를 지나고 있었다. 배가 고팠다. 구비구비 산들을 보니 강원도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잎사귀가 축축 늘어진 옥수수 밭이 드문드문 보였다. 비가 좀 와야 할텐데. 아무튼 교육원이 있는 술샘마을=주천에 접어들었을 때는 거리에 떡하니 서있는 커다란 백자 술병 모양 오브제를 보고 좀 웃었다. 돌에 한자로 새겨진 마을 명을 보니 정말 술 주자에 내 천자를 쓰는 주천이라 지명의 유래가 궁금해졌다. 

 교육원에 도착하고 바로 점심을 먹었다. 본부동(교육동?) 1층 복도에 주르륵 줄을 맞춰 짐을 놓고 같은 층의 식당으로 갔다. 밥이 맛있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던지라 기대 하고 있었는데 기대했던 대로였다. 난 원래 파스타에 들어가는 가지 말고는 안 먹는데, 맛이라도 보자 싶어 가져온 가지 반찬이 엄청 맛있었다.

  밥을 먹고 3층 대강당으로 올라갔다. 오늘 일정은 지급품 배급(?) 및 확인 > 간단한 교육 안내 > 숙소 배정 > 교육 및 생활 안내> 발단식 > 안전 관련 안내 사항 > 저녁식사 > 만남의 시간 순으로 진행되었고 저녁 9시 쯤 끝났다. 중간중간 함께 니카라과로 파견되는 6명의 동기들, 같은 숙소를 쓰는 세 동기들과 인사를 나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1달러 식사의 날, 단전/단수의 날(?) 같은 각종 체험의 날 안내와 가장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 만남의 시간이었다. 72명의 116기 단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기 소개를 듣는 데,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구나, 다들 어쩜 저렇게 말을 잘하고 멋질까 감탄했다. 특히 내가 평소 좋아했던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나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같은 인용구들을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들으니 꼭 처음 만나는 말인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이 사람들과 함께 할 47일 가량의 날들이 기대 된다. 

  교육원에 오기 전에는 6시 15분 기상과 아침운동(새천년체조, 구보 등)이 일괄적으로 진행 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기상 음악이 나오기는 하지만 아침 운동은 자율적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아마 최근에 바뀐 것 같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잘 일어나고 운동도 꼬박꼬박하는 규칙적인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조금 걱정이다. 그래도 느릿느릿 한 걸음씩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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