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2017. 10. 8. 13:09

  그라나다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이 정신 없이 지나갔다. 토요일 오전에는 시험을 어영부영 마치고(독해 파트에 무지개가 된 일곱 나비 얘기가 나왔는데 그제 본 나비가 생각났다) 잠깐 쉬는 시간에 슬쩍 카드랑 펜세트랑 L선생님의 아들 B가 가장 좋아한다는 캡틴 아메리카 노트를 책상 위에 놓아 두었다. L선생님도 가방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꺼냈다. 앵무새 모양의 새피리! 정말 뜻밖의 선물이었다. 좋아서 애처럼 계속 피리를 후후 불면서 왔다갔다했다. 아마 다른 동기쌤들은 퍽 성가셨을 것 같다. 하여간 선생님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모두와 포옹으로 인사했다. L쌤은 내게 스페인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학원에서 대절한 봉고차를 타고 마사야 시장으로 갔다. 학원 쎄끄레따리아(직역하면 비서지만 거의 부원장)인  D 와 한국나이로는 5학년 쯤 되는 D의 딸, 사고 방지를 위해 출장 나온 경찰관(지난 번 마사야 까사 데 꿀뚜라에 갈 때 함께 갔던 그 아저씨)과 함께 갔다. 여튼 마사야 시장은 짧게 말하자면 인사동이었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오래된 시장이라고해서 장날 같은 풍경을 상상했는데 그간 많은 정비를 거쳤는지 멀끔했다.


아쉽게 닫혀있었던 민속박물관. 언젠가 다시 올 날이 있을까?




  시장 안에 있는 baho(소고기+유까+샐러드. 고기가 있는 걸 빼면 비고롱과 비슷)맛집에서 밥을 먹는 일정이었는데 무슨 축제라고 문을 닫아서 시장을 먼저 구경했다. 관광객 티를 팍팍 내면서 산디노 티셔츠와 Diaca Chimba!(니카라과 슬랭. 개좋아! 혹은 존나 좋군! 정도) 티셔츠를 샀다. 할머니 한 분이 꿀을 사라고 하도 권해서 꿀도 한 병 쟁였다. 솔직히 설탕물일거라고 확신했지만 그냥 샀다. 그나마 1달러를 깎았다. Aj 쌤도 한 병 챙기셨다. 


  마사야 빠르께 센트럴 근처로 가서 노점에 앉아 bajo를 먹고 도예로 유명한 산 후안 데 오리엔떼로 이동했다. 산 후안은 니카라과를 지나는 큰 강의 이름이다. 산 후안 데 오리엔떼는 한국으로 치면 강동 쯤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해변으로 유명한 산 후안 데 수르, 산 후안 데 노르떼 등등의 지명이 있다). 물레 돌리기와 새피리 색칠하기 체험을 했다. 색칠에 엄청 집중해서 몰랐는데 나중에 I쌤의 말을 들어보니 D도(딸 쪽) 같이 색칠하고 싶어하는 기색이었다고 한다. (내가 좀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게 뭐라고 나는 주변을 살펴볼 겨를도 없었을까. 내 걸 색칠하라고 줄 수도 있었을텐데. 다른 선생님들도 다들 같은 말을 했다.) 



  하여간 다시 봉고차에 올랐다. laguna de apoyo와 그 너머 그라나다가 내려다 보이는 카타리나(catarina)에 가서 잠깐 둘러보고 그라나다로 돌아왔다. 



  현지어 수업이 끝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동기쌤들과 라 프론테라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선임 단원에게 처음 추천 받아서 간 뒤로 그라나다에서 제일 많이 찾았던 식당이라 그런지(선곡도 늘 좋고) 이곳은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Aj쌤은 먼저 가시고, 느지막하게 나온 우리는 F쌤의 제안으로 식당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A쌤네 가서 잠깐 얘기 좀 나눈다는게 꽤 늦어졌다. 하숙집에 돌아와보니 할머니가 아직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다(할머니는 나와 J쌤이 들어온 다음에 대문을 이중 삼중으로 완전히 잠군다.)


  일요일에는 마지막으로 성당에 가볼까 했지만 그냥 집에 있었다. 아침부터 L쌤이 찾아왔다. 발표 대본을 손 봐야 하는데 그나마 우리 하숙집 인터넷 사정이 제일 낫기 때문이다. 타자를 두드리는 L쌤 옆에서 계속 짐을 쌌다 풀었다 법석을 떨다가 같이 L, J쌤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대성당 근처 카페에서 후식까지 확실하게 챙겼다.


그라나다의 마지막 밤


  L쌤은 타자를 좀 더 치고 노을도 구경하다 돌아갔다. 저녁은 하숙집에서 먹었다. 식탁에 혼자 앉아 J아줌마가 쉬는 날인지 밖에서 사온 게 분명한 볶음밥을 먹었다. 밖이 온통 어두워졌을 쯤 그간 마시다 남은 3.75리터 물통을과 사두고 포장도 뜯지 않은 사과잼을 들고 슬렁슬렁 L쌤네로 갔다. 잼은 파견지로 챙겨가기가 번거로웠는데(하숙집에 주기도 뭐하고, 버리기는 아깝고) 다행히 A쌤이 맡아주겠다고해서 겸사겸사 L쌤에서 만난 것이다. A쌤이 먼저 와있었다. 한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그라나다와도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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