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의 방랑기/아디오스, 니카라과

현지교육 46~47일 차: 벽화 그리기

테오∞ 2017. 10. 2. 03:01


  아침부터 날씨가 쨍하니 좋았다. 하지만 폭우가 쏟아졌던 금요일도 아침에는 하늘도 파랗고 해도 짱짱했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어제 모 기관 담당자 분의 저녁 초대를 받아 외출하셨던 Aj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까따말과 과일로 포식하고 짐을 챙겼다. 여전히 해가 쨍쨍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좀 흐리긴 했지만 작업이 끝날 때까지 비는 오지 않았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사무소 차를 타고 지역사회봉사활동의 일환으로 벽화를 그리게 될 학교로 이동했다. 


  높은 담벼락 너머의 학교는 황량했다. 먼지 낀 벽, 정리 되지 않은 무성한 잡초들, 그네는 어디 갔는지 뼈대만 남은 구조물.. 아이들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대충 교장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학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최근에 다른 봉사단체에서 지원해주어 운동장(?) 한 켠에 지붕을 설치해 비가 올 때도 야외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또 어느 기업인가에서 교과서 등을 후원해주고 있다고도 했다. 우리는 딸랑 벽 한 구석만을 칠하러 간 셈이니 왜인지 좀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페인트가 바닥에 묻지 않게 신문지를 깔고 분필을 가져다 달라 물을 떠 달라 화장실은 어디에 있느냐 등등을 묻고 페인트 뚜껑을 따고 팔레트 대용으로 쓸 페트병을 씻고 자르는 사이에 미술교육 단원인 I, F쌤이 분필로 벽에 밑그림을 그렸다. 생각보다 공간이 좁아서 내가 넣어달라고(그럼 내가 맡아서 칠하겠다고)했던 노란 잠수함을 그릴 수는 없었지만, 순식간에 여러 동물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는 그림이 그려졌다. 각자 동물 하나씩을 맡았다. 과장님은 글씨와 월프 마크 담당. 물론 중반을 지나면서 밑색이 마르는 사이 모두들 왔다갔다 비는 부분들을 메꾸면서 자기가 맡은 동물들 말고도 다른 부분들도 칠해 넣긴 했지만. 하여간 나는 처음에는 거북이를 골랐다. F쌤이 초록색에 노란색을 섞어 색을 만들어 주었다(한 색으로만 칠하면 밑이 많이 비친다고 한다).


 


L쌤의 노동요를(그리고 현지 학부모 및 선생님들의 수다를) 들으며 앉아서 칠하고 서서 칠하고 쭈그려서 칠하다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었다. 현지 기준으로는 한정식도시락 급인 빅맥세트로 포식하고 다시 벽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벽이 잔뜩 알록달록해졌다. 미술교육 선생님들이 명암을 넣어 그림을 한 층 더 생기 넘치게 만들어주었다. 각자 지장과 이름을 남기는 것으로 벽화를 완성했다.


 

비포&애프터





  포토타임을 가진 뒤 학교를 떠났다. 작은 흔적이지만 이 나라에 무언가를 가시적으로 남긴 건 처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화장실이나 놀이터 환경 개선 사업이나 학용품 지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랄까, 우리의 흔적이 아이들에게 어떤 부분에서나마 작은 자극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호텔에서 짐을 찾고 낑겨서 사무소 근처 카페에 갔다. 오늘 하루 수고 많았다고 과장님이 음료를 쏘셔서 감사하게 마셨다. 에어콘 바람이 처음에는 시원했는데 갈수록 추웠다. 바나나베리라는 이름의 스무디를 먹었는데 체리 맛이 강해 내 취향은 아니었다. 카페를 나서서 멋진 노을과 함께 그라나다로 달렸다. 밖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방에 들어오니 다시 나가기가 귀찮아져서 씻지 않고 그대로 기절했다.


  일요일인 오늘은 7시쯤 느지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 샤워와 빨래를 동시에 해결했다. 머리를 말리면서 그간 쌓인 짐을 정리했다. 이제 일주일 정도 뒤면 완전히 그라나다를 떠나게 되는데, 미리미리 짐을 정리하지 않으면 너무 복잡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서 한국에 두고 온 줄 알았던 스킨 두 병을 발견하는 쾌거를 이뤘다. 

  점심은 남은 빵 두 조각과 오렌지, 에스뗄리 하숙집 가족들이 선물로 준 커피로 해결했다. 아직 저녁까지는 3시간 정도 남았는데 배가 고프다. 아껴 놓은 야채 참치를 먹을까 말까.(결국 오렌지만 더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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