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교육 27~30일 차
이번 주 목요일과 금요일은 각각 산 하신토 전투 승전기념일(1856년 9월 14일, 스스로 니카라과의 대통령이라 자칭한 미국의 윌리엄 워커의 친구, 바이런 콜의 부대를 호세 돌로레스 에스트라다의 부대가 산 하신토 농장에서 물리친 사건. 공교롭게도 멕시코가 텍사스랑 붙었던 같은 이름의 전투가 있는데 그건 1836년의 일)과 독립기념일(1821년 9월 15일.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가 에스파냐에게서 독립함)이다. 두 날모두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고 묶어서 Fiestas Patrias라고 부른다. 당연히 학원도 14, 15일에는 쉬고, 징검다리연휴인 16일 토요일도 쉰다. OJT를 앞두고 짧은 휴가가 주어진 셈이다.
식량보급을 위해 화요일 수업을 마치고 A, Y쌤과 마트에 가 장을 보고 돌아왔다. 택시 아저씨는 한 사람당 각각 15꼬르도바를 불렀는데 우리가 10 꼬르도바로 깎아서 기분이 영 안 좋아 보였다. 우리는 항상 10꼬르도바에 탔기에 배째라 하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먼저 타고 있던 아줌마를 내려주고 돌아가야 하는 길이라 15꼬르도바를 불렀던 듯해서 조금 미안해졌다. 하여간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급한 마음에 혼자 빠르게 길을 건넜다. 건너려고 했다,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못보고 치일 뻔 했다. 다행히 뒤에 있던 Y쌤이 소리 질러서 순간 멈출 수 있었다. 딱 한 걸음만 더 나갔어도 최소 골절이었는데 다행이다. A쌤은 내가 평소에도 길 건널 때 차를 잘 안 본다고 제발 잘 보고 다니라고 말했다. 나는 말이 안 나와서 눈만 땡그랗게 뜨고 끄덕끄덕했다. 샌드위치를 해먹으려고 빵과 햄과 치즈를 사들고 돌아왔다.
수요일에는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간접목적어 때문에 L쌤이 나나 미칠 것 같았다. 아무래도 결막염으로 추정되는 L쌤의 눈도 엄청 신경쓰였다. 쌤은 수업 내내 썬글라스를 끼고 있었는데 내게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뭘 끼고 수업을 한 게 문제가 아니라 제발 병원 좀 가시지 싶어서 더 신경 쓰였다. 하여간 어찌저찌 간접목적어를 이해하는데 성공하고 L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학원에서는 냉장고 대신 아이스박스가 있는데, 오늘은 새 얼음 채워 넣는 것을 잊었는지 녹은 물이 출렁거렸다. 문제는 지퍼백에 담아 놓은 내 햄과 치즈가 침수 되었다는 것. 지퍼백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나보다. 다행히 빵은 따로 가방에 넣어 두어서 멀쩡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싶어서 물을 따라내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오늘의 노래는 Flor Pálida. 상처받고 죽어가는 창백한 꽃을 발견해서 물 주고 돌봐서 꽃이 살아났다 이제 꽃은 나의 것 야호~하는 빈약한 비유의 가사가 개인적으로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그놈의 꽃 못 잃어) 그냥 들었다. 지금 뮤비를 찾아보니 뜬금없는 허수아비 백댄서들이 너무 무섭다.
수업 끝나고 못 버티겠다 싶어서 동기쌤들을 따라가 라 프론테라에서 감튀와 맥주를 먹었다. 나는 여지껏 계속 또냐(니카라과 맥주)를 안 먹고 버티고 있다가 이 날 처음 마셨다. 니카라과에 와서 위장에 부어넣은 액체 중에 제일 시원했다. 물 마시듯 들이켰다. 거의 한 달만에 알콜을 집어 넣으니 쥐똥 만큼 마셨는데도 혀가 좀 저릿저릿 부은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 기절했다가 일어나니 목요일이었다.
드디어 도마뱀이 방에 들어와 기쁘다. 벌레를 모두 먹어주길
목요일에는 숙제를 미리 다 해두었다. Por와 Para를 사용해서 경험담을 쓰시오만 빼고. 다른 건 아무래도 OJT기간 중에 들고다니면서 하기에 번잡할 것같아서 미리 끝냈다. Y쌤 방에 놀러온 L쌤과 딥톡을 하고 저녁에 또 L쌤과 Y쌤을 쭐레쭐레 쫓아서 라 프론테라에 갔다. 하숙집 가정부 아줌마가 눈병으로 병원에 간다고 저녁 식사를 3시에 먹어서 이 시간에 나갈 수 있었다. 어제처럼 감튀와 맥주를 흡입했다. 3시 저녁 먹기 전에 수요일에 먹다 남겨 온 햄과 치즈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점심으로 먹었는데, 아무래도 이상한 것 같았다. 위를 좀 소독시킬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맥주를 좀 더 마셨다. Y쌤이 시킨 빅토리아(다른 맥주. 또냐에 밀려 2인자 신세)를 쬐끔 맛 봤는데 오히려 내 취향에는 빅토리아가 더 맛있었다. 앞으로 술 마실 일 있으면 빅토리아를 시킬 듯.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A쌤과 함께 L쌤네 집에 가서 고양이들을 관음하고 L쌤네 하숙집 아줌마와 얘기하면서 (나만)초코우유를 마셨다. L쌤네 정원은 엄청 넓다. 어렴풋하게 가위개미가 잎사귀를 옮기고 있는 걸 본 것 같기도 하다.
산책하고 싶어하는 A쌤 및 Y쌤과 잠깐 걸었다.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쫄보인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절부절 못했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서 또 기절했다.